“사랑, 웨슬리 핵심적 선포와 만난다”

제10회 카우만 기념강좌, 조셉 돈젤 교수 강연
서울신대서 ‘사랑의 정의와 역동성’ 등 2차례 강연

2012-10-17     조재석 기자

서울신학대학교와 오엠에스(OMS)가 공동 주최한 제10회 카우만 기념강좌에서 에즈베리신학대학원 조셉 R. 돈젤 교수는 “사랑의 증진을 강조하는 성서의 가르침은 웨슬리적 성결 운동의 교부인 존 웨슬리의 핵심적인 선포와 만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10월 9일과 12일 두 차례 강연한 돈젤 교수는 첫날 자신의 신앙과 신학적 여정을 소개하고 자신이 배워 온 가르침과 불만족스러웠던 내용들, ‘사랑’으로의 순수한 초대와 사랑의 중심성에 대한 성경의 광범위한 증언을 소개했다.

이어 두 번째 강연에서 기독교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기독교인 경험 안에서 사랑의 역동성이 갖는 의미와 내용을 집중 조명하였으며 “우리들이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의 계시를 기다리면서 우리의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강연요약

웨슬리는 명백하면서도 강하게 온전한 성화의 본질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미지와 주제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웨슬리 자신은 다른 이미지들 보다 사랑을 선호한 것이 분명하다. 성경과 존 웨슬리가 사랑의 탁월성이라는 주제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성경과 웨슬리의 이러한 합일점은 나의 최고의 관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함을 이해하고, 경험하며, 지켜나가는 데 있어야 함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영적 후예들이 사랑의 아름다움을 상실하였고 사랑을 기독교의 필수적인 신학체계로 삼는 정통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사랑의 핵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기독교의 사랑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하고 다음으로 기독교인의 경험 안에서 사랑의 작용의 역동성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신약성서를 살펴보면 사랑을 정의하는 여러 구절을 만난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사랑의 본성이 우리를 위해 죽음에 아들을 내어준 하나님의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정의되고 있음을 본다. 기독교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한 기독교 복음의 핵심 이야기로써 정의된다.

사랑과 행위의 문제 :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는 사랑의 행위는 세상의 필요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행한 것이었다.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하라는 행동으로의 부름이며 현실 세계 안에서 측정 가능한 변화를 일으키라는 부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행위에 앞선다.

사랑과 자기희생의 문제 : 하나님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었고 아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주었다.

사랑의 근본적인 목적의 문제 : 하나님은 생명 주시기를 원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기독교의 사랑은 하나님과 더불어 타자들에게 생명과 활력을 준다. 이것이 사랑의 열정이다.

바울의 분석에 따라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기독교의 도덕성과 거룩함(성결)으로의 부름을 철저하게 재정리할 수 있다. 사랑은 자연히 필연적으로 죄를 배척하며 거룩한 삶을 창조하기 위해 성령이 지배하는 정결케 하는 역동성으로 비쳐진다.

사랑의 열망의 문제 :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은 상호 침투하는 연합의 연대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흘러들어간다. 사랑은 타자들이 번영하는 것을 열망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공유하는 생명의 기쁜 연합 안에 하나 되게 할 것이다.

사랑의 근거에 대한 문제 : 기독교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한 것이지 강도 만난 사람에 대해 어떻게 느꼈느냐가 아니다. 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여 알고 받은 정도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사랑의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고 있다는 깊은 확신(사랑받음의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과의 더 깊은 만남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해방시키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어 거룩하고 능력 있는 삶으로의 확장된 부름을 완성할 수 있다.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이해되고 믿어지도록 교리로서 설명되는 것을 넘어 사도들이 기도했던 바다. 하나님의 사랑은 경험되어야 한다. 보다 깊은 사랑의 계시를 요구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그 사랑의 계시를 기대하라는 것을 의미하며 은총의 수단 안에서 그것을 기다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 깊은 사랑의 계시를 기다리면서 우리의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이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명의 충만함으로 번성하기를 열망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려 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점점 넓어지는 기쁨의 순환에서 우리와 하나님과 아들과 친밀한 관계에 참여하기를 열망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열망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심오한 계시에 먼저 감동을 받음으로써 마음 안에서부터 생겨난다. 사랑의 본성상 사랑의 유입은 죄를 배척하며, 거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이상이 성서를 지배하고 있는 바, 성서는 다른 어떤 덕이나 열망보다도 사랑의 증진을 말한다.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은 웨슬리적 성결(거룩) 운동의 교부인 존 웨슬리의 핵심적인 선포와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