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시한부 딸'이 취업까지 12년 지켜주신 은혜로 산다

인천 그이름교회 김영춘 목사 가족 뼛속 종양 자라는 불치병 판정 대학 졸업까지 매일 등하교시켜 디자인전공 딸은 이모티콘 당선 수석 졸업 후 서울로 출퇴근도 “종양 커지지 않아 기적 그 자체”

2025-04-16     남원준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고난 속에서 연단을 받고 내면의 성숙이 일어나며 더 자라나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어느 목회자 가정에 불쑥 찾아온 고난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지만 결코 삶이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이라는 낯선 손님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더욱 단단한 가족애를 갖게 됐다.

인천 그이름교회 김영춘 목사와 장진희 사모는 지난 12년간 희귀병을 앓는 딸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가슴 졸일 때도 많았지만 어느 가족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다. 딸의 병은 그대로이지만 남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을 돌보는 김영춘 목사와 장진희 사모.

중학생 때 희귀병 진단
쾌활한 성격에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둘째 딸 주은 씨(26‧당시 중학생)가 어느 날 갑자기 왼쪽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장진희 사모가 딸의 정강이를 살펴보니 정강이가 빨갛게 부어있었다.

딸이 어디에 부딪힌 적이 없는데 정강이가 왜 아프다는 건지 이상했다. 동네 작은 병원을 가려다가 부은 다리가 심상치 않아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딸의 엑스레이 사진을 살펴본 의사가 김 목사 부부를 불렀다.

정강이에 까만 부분이 보인다며 정밀검사를 위해 MRI를 찍어봐야겠다고 했다. 가벼운 염증 정도이길 바랐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날 바로 입원을 하고 MRI를 촬영했다. MRI 결과는 악성종양으로 나왔다. 의사는 조직검사를 위해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모 대학병원의 의사를 소개해주고는 딸이 3개월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말까지 했다. 김 목사 부부의 입에서 주님을 찾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조직검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의사가 “일단 암은 아니다”고 했지만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병명은 ‘섬유성이형성증’으로, 정강이 뼛속에 골수를 잡아먹는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는데 치료제가 없고 딸이 성장하는 동안 종양이 계속 자랄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치료제가 없어 고통이 오면 그냥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도 종양이 또 생기고 더 무서운 것은 몸 이곳저곳에 퍼질 수 있는 다발성이라는 것. 

의사는 종양이 자라면서 뼈를 밀어내기 때문에 뼈가 얇아지고 약해져 조그만 충격에도 뼈가 골절될 수 있으니 앞으로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소 달리기를 좋아하던 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김 목사 부부는 다리 통증이 여전한데 약도 없이 그냥 참고 견뎌야 하는 딸이 안타까웠다. 장 사모는 딸의 손을 잡고 “언젠가는 꼭 치료제가 나올 거야. 힘들겠지만 하나님과 함께 걷자. 고통이 오더라도 기도하면서 믿고 걸으면 안전할 거야”라고 위로했다. 딸을 위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김영춘 목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리가 아픈 딸을 차에 태우고 집과 학교를 오고 가며 등하교를 책임졌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은 딸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 4년을 무사히 마친 졸업식 날에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부녀간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고 애틋해지는 계기가 됐다. 차 안에서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듯이 수다를 떨고 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를 세심히 알게 됐다. 딸이 대학을 다닐 때는 오후 수업을 마칠 때까지 캠퍼스 안에서 기다리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에 떠올리는 작은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병마 딛고 사회로 진출 
딸 주은 씨의 병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김 목사 가족의 삶은 더 행복해졌다. 

정강이의 종양이 자라나면서 뼈가 가늘어졌지만 지금까지 골절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계단에서 구른 적도 있지만 부러지거나 다치지 않았다. 주은 씨는 자신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집 앞 공터에서 천천히 뛰어보기도 했다. 뛰면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를 파악하고 그 한계 안에서 행동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주은 씨는 인천의 모 대학 디자인학과를 지원해 합격했다.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재수를 생각했지만 집안 사정을 생각해 포기했다. 대신 주은 씨는 대학 입학 전 큰 선물을 받았다. 대학 경비를 조금이라도 벌어보고 싶어서 카카오톡 이모티콘 그리기에 응모했는데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 ‘오몽이’가 당선된 것이다. 이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여긴 주은 씨는 인천의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생활하면서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광도 누렸다.  

주은 씨는 대학 졸업 후 현재 서울의 모 광고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여전히 다리에 종양이 붙어있고 통증도 참아야 하지만 혼자서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스스로도 자신이 희귀병 환자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데 주치의가 주은 씨의 상태를 보고 놀라곤 한다. 종양의 크기를 보면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할 텐데 아픔도 잘 참고 한 번도 골절되지 않은 것을 신기하게 여긴다.   

1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의학도 발달해 주은 씨의 병이 희귀병이긴 하나 수술 등의 방법으로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주은 씨의 성장기가 지나면서 다행히 종양의 크기도 커지지 않고 있다. 

이 병이 다발성임에도 정강이 외에 다른 곳에 종양이 생기지 않은 것도 특별한 은혜다. 만약 종양이 고관절 같은 곳에 생겼다면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주은 씨는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물건에 부딪힐 때마다 아픈 부위를 빗나가게 하셨던 하나님이 뼈가 으스러지지 않게 돌봐 주셨다”면서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과 기적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딸의 육신의 아픔을 가슴으로 더 아파했던 장진희 사모는 딸의 아픔을 멈춰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왔다. 작년에는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는 최승주 화백의 전시회에서 작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늦은 오후 김 목사 부부 가족만 전시회에 남아 성화를 보고 있었는데 유독 눈시울이 붉게 물든 예수님 그림 앞에 발길을 멈추었다.

그렁그렁하게 고여있는 눈물이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예수님의 두 눈이 장 사모를 대신해 울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속으로 두 손을 모았다. “예수님, 제가 마음이 아파요. 아픈 딸의 몸을 고쳐주세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주은 씨가 카메라로 장 사모를 촬영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장 사모는 “예수님과 아픈 우리 딸이 접목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뿌리 깊은 나무에 병들고 상처 입은 가지를 접목한 예수님, 딸을 향하여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며 아픈 모습 그대로 열매를 맺어가신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장 사모는 최근 『당신이 내게 준 길입니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에세이집을 내면서 딸 주은 씨의 아팠던 기억을 본문 속 한 챕터에 담아냈다. 잊고 싶은 고통의 기억은 장 사모의 글 속에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아픔이 느껴진다. 글의 끝부분에 장 사모는 희망과 소망을 적었다.

‘우리 딸은 회사에 출근한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해보겠다면서 사회로 출발했다. 여전히 종양은 뼛속에 있고 다리는 연약하지만 딸의 고백처럼 세월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 편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 세월을 기적으로 일궈 나갈 것이기에 힘이 난다. 딸처럼 아픈 아이들을 위해 속히 치료제가 개발되길 기도하면서 오늘도 기적 안에서 우리는 살아간다.(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