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극복하고 인색 2막 사는 허성호 목사

2020년 11월 쓰러져 중환자실 한쪽 팔다리 못 쓰고 말도 어눌 극심한 통증에도 재활 이 악물어 5개월 만에 환자들에 말씀 전해 하루 2만보 걷기 등 차츰 좋아져 재활병원 원목으로 새로운 목회

2025-04-16     황승영

뇌경색은 대부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겨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죽음의 병’이라 불리기도 한다. 허성호 목사(영등포교회 명예)는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났다. 생명을 덤으로 얻은 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 바로 영혼 구원과 사랑을 위해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뇌경색으로 찾아온 시련

허 목사는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 교단에서 고시위원장, 총회 교육위원장, 헌법연구위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학생부 공과, 구역 공과, 사순절 묵상집 등 많은 교재도 집필하는 등 열정적인 사역을 이어갔다. 그런데 여전히 목회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2020년 11월,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주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저녁 무렵 갑자기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단순한 과로라고 생각했지만, 한쪽 손과 다리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여겼지만, 불안한 마음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MRI 촬영에서 소뇌에 뭔가 있어 보인다면서도 외래진료만 권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퇴원조치를 했다.

11시경 돌아온 그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새벽 3시경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한쪽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 오른쪽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져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놀란 아내가 119에 전화를 걸었고,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다시 향했다. 응급실에서 병명이 확인됐다. 뇌경색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이상이 없다고 했던 의료진이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내리자 무척 황당했다. 그런데도 의료진은 혈전용해제 투약도 하지 않았다.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회복 가능성을 낮게 보았던 것이다.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허 목사는 워낙 건강했던 사람이었기에 꿈에도 이런 병이 나한테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이미 뇌혈관이 막혔다고 했어요. 왼쪽이 마비됐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실의에 빠질 시간도 없이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큰 절망감이 밀려왔다.

죽음 앞에서 드린 간절한 기도

3일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으며 허 목사는 죽음을 직감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까?”라는 회한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는 병상에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는 “좀 더 기회가 있다면 하지 못하는 일, 영혼을 사랑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겠다”고 기도했다.

3일째 되던 날, 기도하는 중 불길이 보였다.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용기 내어 그 불길을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떴다. 집중치료실에서 혼돈된 의식 상태로 3일을 보내고 일반 병실에서 비로소 온전한 의식이 돌아왔다. 그래도 처음에는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 음식조차 먹을 수 없어 콧줄을 통해 연명해야 했다.  

이때부터 피눈물나는 재활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팔을 비틀며 근육을 깨우는 고통은 눈물을 쏟게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성도들이 눈에 밟혔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았는데, 이제 살만해졌다고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회복해서 더 헌신하고 싶었습니다.”

끊임없는 재활과 복음 사역

운동 중인 허성호 목사

 

하루도 쉬지 않고 재활에만 매진했다. 특히, 명지춘혜재활병원 설립자 장혜실 권사의 사랑과 영등포교회 성도들의 릴레이 기도와 헌금, 부평제일교회 등의 후원 덕분에 재활 의지를 다잡았다.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다. 1개월 만에 콧줄을 빼고 죽을 먹기 시작했고, 3개월 후엔 한 걸음씩 걸을 정도로 좋아졌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입원 6개월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오른쪽 다리와 팔의 힘은 여전히 약했고 걸을 때마다 발이 바깥으로 돌아가는 후유증이 남았다. 6개월 동안 외래로 다니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재활했다.

아픈 몸으로 새벽부터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오전에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면 오후에 혼자서 반복했다. 6개월째 되던 날,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설교를 부탁받았다. 40분간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6월에는 영등포교회 강단에 다시 섰다. 완벽하게 회복되진 않았지만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예배까지 인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후에도 그는 재활에만 매진했다. 한 해 동안 눈만 뜨면 재활 운동을 했다.

매일 1시간씩, 1,2km 정도를 걸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걷다가 점차 속도를 올렸다. 1년 동안 그렇게 걸었더니 체력이 좀 붙었다. 재활치료가 끝나면 추가로 홀로 운동을 했다. 근력 운동도 복습했다. 마침내 팔과 다리에 힘이 붙었다. 아파트 경사로 매일 15층까지 걸었다. 책보고 성경 읽는 시간 외에는 움직였다.

허성호 목사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인생을,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병으로 죽을 수도 있었는데 덤으로 다시 살은 인생으로 생각하고 남은 인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이후 허 목사는 건강과 행복을 전달하는 전도사로 바뀌었다. 자신이 재활해온 춘혜재활병원에서 그는 원목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항상 웃고 다니며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는 적극성이 생겼다고 한다. 춘혜재활병원에는 2-3개월에 한 번씩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병원으로 출근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며, 신앙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벌써 신앙강좌를 80회 이상했다.

점심식사 후 1시부터 1시 30분 사이 직원들이 그를 찾아와 신앙상담을 한다. 허 목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원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약간 후유증이 남아 있다. 비록 오른쪽 마비로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지만, 영혼 사랑에는 흔들림이 없다. 비록 마비가 남아있지만 왼손으로 식사도 하고, 직원들에게 카톡도 보낸다. 설교 원고나 각종 글도 왼손으로 쓴다. 남은 시간도 성경도 가르치고 전도를 하면서 덤으로 얻은 생명을 비로소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에 힘을 쓰고 있다.  

허 목사는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를 의지하고 있다. 이전에 그가 짚고 있었던 명예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이제는 진정 하나님께서 주신 지팡이만 의지하고 있다. 뇌경색을 극복한 허성호 목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병 극복을 넘어 신앙의 부활을 보여준다.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영혼 구원을 외치던 그의 기도는 이제 병원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기적, 그 은혜를 나누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부활의 참된 의미를 몸소 증언하는 허 목사. 그의 인생 2막은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