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삶도 준비된 제단도… “주님, 폭삭 고맙워예”

신장 2번 이식받은 최기완 목사 20년 전 첫 이식 뒤 목자의 길로 부교역자로 섬기던 중 또 생명 위기 이번엔 아내가 기증해줘 사랑의 빚 제주 성산 신천리에 로아교회 개척  부부 예배 드리다 드디어 ‘1호 성도’  동네 주민들 아직 마음 열지 않지만  마을잔치 열고 구석구석 청소 봉사 “실천 잘하는 ‘마을 속 교회’ 꿈꿔요”

2025-04-16     김준수
두번의 신장이식을 받고 사명을 감당중인 최기완 목사.

한때는 어둠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20대 시절, 예고 없이 찾아온 신장질환으로 응급 투석을 시작해야 했고, 생명을 붙잡기 위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특별했다. 바로 부활절 밤이었다. 죽음을 예감하던 그 순간, 하나님은 다시 살게 하셨다.

“죽음 앞에 섰던 그날, 부활은 저에게 상징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두 번의 신장이식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최기완 목사(제주로아교회)의 고백이다. 지금은 제주 성산읍 신천리에 제주로아교회를 개척해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조용히 집중하고 있다. 죽음과 생명을 오가는 최 목사의 걸음은 고백과 감동, 순종과 사랑의 여정이었다. 

2002년 부활절. 신장 기능이 급격히 악화된 최 목사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숨을 쉬기조차 힘든 상태로 폐에는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아팠습니다. 눕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습니다. 그날 밤이 부활절이었어요.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던 날, 저는 제 생명을 걸고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영화 음악을 꿈꾸며 휴학 중이었지만, 이후 투석과 치료에만 전념해야 했다. 이후 2년 8개월간 투석 치료를 받았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의 릴레이 장기기증을 통해 첫 신장이식을 받았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먼저 신장을 기증하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지던 섬김 속에서 최 목사는 세 번째 생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들은 소식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첫 릴레이 기증자가 목사였다는 것이다. 생명을 나눈 그 소식을 듣고, 그는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알고 보니 저에게 직접 주신 분은 아니었더라고요. 릴레이 기증의 첫 주자가 목사님이셨고, 저는 세 번째 수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똑같았습니다. 한 분의 헌신이 이어져 저를 살렸으니까요.”

아내가 준 두 번째 생명, 예비된 교회 개척
첫 번째 이식 후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기고, 교육 사역도 감당했다. 그렇게 18년 가까이 건강을 유지해왔지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신장이 점차 기능을 잃어갔고, 다시 생명을 붙잡기 위한 결단이 필요했다. 이번엔 아내가 손을 내밀었다.

“장인어른도 저에게 신장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아내가 먼저 결단했습니다. 아내도 건강한 편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주저 없이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었어요.”

두 번째 생명도 그렇게 기적적으로 찾아왔다. 사랑으로 빚진 삶, 최 목사는 그저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 올릴 뿐이었다. 사랑의 빚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며 사랑을 전하는 삶으로 갚기로 했다. 

그렇게 로아교회 설립도 이미 준비된 듯 거침없이 진행됐다. 두 번째 이식 이후 건강을 회복하며 장인 이종수 목사(제주해변교회)의 사역을 돕고 있던 최 목사에게 평소 제주에 다수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비전이었던 장모 변상영 목사(제주해비치교회)가 교회 개척을 권유한 것이다. 만리현교회 권사인 최 목사의 어머니도 리모델링 비용을 헌금해 아들의 사역을 응원했다. 

하지만 예배당으로 쓸 장소를 알아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기독교에 배타적인 제주도민들의 뿌리 깊은 정서도 교회 개척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하나님은 먼저 건물주의 마음을 움직여주셨다. 성산읍 신천리 초입에 몇 년간 방치됐던 상가 건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2024년 4월 28일 설립예배를 드렸다.

신천리 작은교회, 이웃에게는 쉼터처럼
로아교회는 신천리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다. 마을의 해녀 어르신들은 ‘교회가 들어왔다’며 경계심이 가득했다. 예배는 시작됐지만 목사와 사모 둘뿐이었다. 그러나 매주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었다.

설립 1주년과 부활주일을 앞두고 거짓말처럼 한 성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회가 위치한 건물의 식당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최 목사 부부의 예배를 보면서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1호 성도로서 예배의 제단을 함께 지키고 있다. 

“우리는 숫자보다 생명을 보려고 해요. 누군가 진심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로아교회의 ‘로아(ROA)’는

‘Love One Another’라는 의미의 로아교회는 제주시 성산읍에 위치해 있다.

의 약자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마을을 섬기고 있다. 지난해 여름, 로아교회는 제자광성교회(박한수 목사)와 군산중앙교회(김영우 목사) 청년들과 함께 어르신을 섬기는 행사를 두 차례 진행했다. 삼계탕과 비빔국수를 대접하고, 복음 부채 만들기와 영정사진 촬영, 마사지 봉사를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어르신들이 ‘자식도 안 해주는 걸 교회가 해준다’며 기뻐하셨어요. 해녀 어르신들이 저희 교회를 기억해 주셨고, 이웃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최 목사는 올해 마을과 표선해수욕장 청소 봉사를 정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또 교회 한편에는 책방을 열어 누구나 와서 차를 마시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그는 교회가 ‘숨 쉬듯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최 목사는 “복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식사를 대접하고, 웃게 해드리는 그 순간이 복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목회자가 먼저 복음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은혜 안에 머물고, 가정이 그 은혜 안에 있어야 성도도, 교회도 건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언젠가는 매년 가을마다 투석을 받는 목회자를 섬기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첫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제주 라파의 집에 100만원을 전달했다. 건강도 재정도 여유롭지 않은 가운데 시작한 목회였지만, 최 목사의 표정은 평안하다. 말투는 차분하고, 고백은 진실하다. 두 번의 생명나눔을 경험하며 배운 것, 그것은 생명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눠야 할 소명이라는 것.

올해 부활절, 로아교회에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예배가 드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세상 그 어떤 고백보다 무겁고 깊은, 부활을 살아낸 한 사람의 찬송이 울릴 것이다.

최기완 목사는 “하나님이 저를 두 번이나 살리셨습니다. 저는 오늘도 그 은혜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