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 소망의교회 개척 이야기
가족끼리만 예배 9개월, 드디어 사람을 보내셨다 편한 사역 뒤로 하고 캐나다 이민 생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아내의 병 앞에 “이젠 말씀 묵상만” 거실서 시작 지금은 임시공간 마련 예배 후에 식사-묵상, 그리고 기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그에게서 나온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62:5–6, 새번역)
하나님께서 개척에 대한 마음을 주실 때, 이 말씀을 함께 주셨습니다. 우리의 형편으로는 불가능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저희 가정에게는 하나님만이 소망이라는 분명한 신호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름도 ‘밴쿠버 소망의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우리가 정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두려움과 부족함 사이에서 들려온 부르심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1–3, 새번역)이 말씀이 임했을 때, 저희는 평안한 한국의 사역지를 뒤로하고 낯선 땅,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결단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순종의 감격보다 내 안의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목회가 두려웠습니다.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왜 준비되지 않은 나를 부르셨을까? 그 두려움은 사역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민 초기, 우리는 생계를 위해 청소, 재활용품 수거, 정육점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해 일했던 시간들은 단지 돈을 버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이민자 성도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과 눈물, 그리고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현실적인 고통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지금 저의 목회가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다가가게 하는 귀한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가정을 덮친 고난 속, 무너진 것 같은 날들
아내가 누워만 있고 일어날 수 없던 어느 날, 저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무력감에 눌려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을 나가야 했고, 아이들을 챙겨야 했고, 집안일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 마음 안에는 목회자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깊은 무력감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할 여유도,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이 그저 하루를 버티는 삶 속에서, 저는 캄캄한 터널을 걸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말씀은 여전히 제 곁에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저는 말씀 묵상에 붙잡혔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오지 못했지만, 그때 저는 마음 깊이 결단했습니다. “이제는 평생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시작,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저희 가정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이민 서류가 기적처럼 승인되었습니다. 우리에겐 그 일이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살아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배하라. 내가 교회를 세우겠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도 목회가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논리가 아니라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결심했습니다. 사람을 모으지 않더라도, 가족끼리라도 예배하자. 그렇게 시작된 거실 예배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밴쿠버 소망의교회의 첫 예배였습니다.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 집주인에게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쫓겨나는 상황도 겪었습니다.
갑작스레 예배 장소가 사라졌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통해 지금의 콘도 커뮤니티룸이라는 임시 예배 공간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의 자리를 다시 주셨고,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람 없이 시작한 예배, 하나님이 보내신 한 사람
우리는 개척한다고 알리지 않았고, 광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면, 하나님이 사람도 보내실 것이다.” 그 믿음 하나로 9개월 동안 가족만 예배했습니다. 9개월이 다 되어갈 즈음, 아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주시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 주일, 정말로 한 사람이 예배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첫 열매였습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교회, 그리고 조용한 헌신
지금은 콘도 커뮤니티룸에서 주일 오전 11시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는 식사와 묵상 나눔을 통해 성도들의 마음이 말씀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말씀이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다가오는 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는 기도합니다. 예배 후에 성인과 아이들이 따로 나누어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맡아줄 사역자를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는 지금도 아내가 준비합니다. 아직도 아내는 24시간 통증과 관절 변형 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과 힘으로 조용히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로 다 하지 못했지만, 그 수고와 희생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헌신은 언제나 제게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은혜입니다.
최근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나는 다시는 한국 교회에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그런데 이 교회에는 나와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또 다른 성도는 말씀 묵상을 하면서 “이제는 평생 말씀을 가까이하고 싶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러한 작은 고백 하나하나가 제게는 목회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이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순종은 자격이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밴쿠버 소망의교회는 잘 준비된 목회자, 계획된 구조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그저 부족한 자의 순종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지금도 목회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오늘도 한 걸음씩 순종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