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시론-스스로 괴롭게 하라
그토록 지루하게 기다려왔던 탄핵 정국은 끝이 났다. 승복은 미리 약속한 대로 지켜질 것이다. 이제는 파면 정국으로 들어섰다. 이 파면 정국이 혼란의 시기를 잘 매듭지을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기를 소망한다.
탄핵 결과에 대해 한 편에서는 승리의 쾌재를 부른다. 당장 새로운 질서가 주어진 것처럼 좋아하고 환영한다. 기쁨의 눈물을 쏟는다. 하지만 또 다른 편은 패배의 고배를 쓰라리게 맛보고 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절망같은 실망의 눈물을 마신다.
우리는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곧잘 잊어버려 힘든 사태를 맞았다. 결국 세번째 탄핵 정국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지불한 비용이 너무나 컸다.
광화문과 여의도, 헌재와 용산에서 지샌 에너지가 얼마인가? 결국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운을 빼야 했는가? 이제 파면 정국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나갈지를 생각해 보자. 먼저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적, 경제적, 안보적 위상을 돌아보자. 미국의 관세 폭탄과 새로운 국제 질서 재편이 우리에게 주는 압박이 크다.
그동안 탄핵으로 인한 공백은 소상인으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위태로운 절벽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 틈새에 북한은 어떤 색다른 위협을 준비했을지 불안스럽다.
그러나 정작 우려스러운 과제는 국민의 흩어진 마음이다. 두 진영으로 갈라진 상상 이상의 분열이 있다. 평소에 중도는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진영이다. 이런 상태로 우리 마음이 여전히 흩어져 있다면 이것이 더 큰 파국이다. 이제 머리를 맞대어 보자. 파면 정국은 모두가 풀어가야 할 과도기적 과제이다. 대선을 위한 일정표는 주어졌다. 마음을 추스릴 차례이다. 갈라진 마음으로는 이 과정을 제대로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지난 겨울은 너무도 혹독했다. 지루하고 생기를 앗아간 시기였다. 하지만 봄날은 돌아와 만물이 생기를 되찾았다. 이처럼 우리도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 마음의 봄날을. 나라를 잃어본 고통을 기억하자. 자유를 잃고 억압으로 지샌 날들을.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로 부패했던 나라의 절망을 기억하자. 국운이 상승하던 월드컵 4강, 기적의 날들을 기억해 보자. 지금이야말로 이 놀라운 유산을 끄집어 내어 하나의 마음으로 회복하자.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속죄일이다. 어떤 인간의 죄라도 사죄받는 절기이다. 얼마나 특별한 시혜인가. 이것은 사죄를 위한 피뿌림으로 완성되었다. 속죄를 받기 위해 나아가는 백성에겐 한 가지 과제가 있었다. “스스로를 괴롭게 하라”(레23:27,29,32)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이것이 아닌가?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괴롭게 하는 시간을 가질 때이다. 이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다. 자기 욕망을 내려놓는 절제이다. 조용히 묵상하며 기다림이다. 새로운 희망의 봄날을.
파면 정국은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 분열에서 화합으로 나가는 시간이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나가는 시간이어야 한다.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시간이어야 한다. 오직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