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예수의 길, 교회의 길

2025-04-02     강철구 목사(죽산대교회)
                강철구 목사(죽산대교회)

교회는 더이상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도전을 받았다. 변화의 정점은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새로운 일상 속에 교회가 어떻게 전환하는가였다. 안타깝게 안주하는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인 성도의 신앙이 더욱 양극화되었다는 조사통계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필자는 진정한 변화의 방향은 교회가 왜 존재하고 무엇을 하는 공동체인지를 다시 물음으로써 본질을 회복하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고 본다.

교회의 세 가지 본질
교회 3대 본질은 케리그마(Kerygma), 코이노니아(Koinonia), 디아코니아(Diakonia)이다. 
케리그마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여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하나가 되는 현장이며, 디아코니아는 타자를 위한 공동체(이웃을 향한 책임 있는 봉사)이다.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병이 없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의미다. 

건강한 교회도 교회의 3대 본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케리그마 중심의 목회이며, 코이노니아 역시 교회라는 울타리 안의 멤버십을 가진 자들의 친교, 사귐, 교제이다. 하나님과 수직적 관점에서 나 자신, 그리고 구성원들과 친교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수평적 관점에서 비기독교인과의 친교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예배 공동체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적 인식의 변화에서 교회와 성도의 감소를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디아코니아는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외면당하는 큰 부분이다. 이웃을 섬기는 봉사를 하나님의 사랑을 근간으로 하여 이웃을 향한 책임 있는 봉사가 아니라, 교회의 홍보나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전히 한국교회가 본질에서부터 쏠림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교회 밖과 단절하여 스스로 고립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예수의 길은 성육신의 길이다
창조주이며 영원하시며 하늘 보좌에 계신 성자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시공간의 세상에 친히 오셨다.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로 친히 가셨다. 변두리 인생으로 사람들을 피하여 다니던 무명의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우물가에 앉아 기다렸다. 그 여인을 만나주셨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가 되어 주셨다.

예수께서 경계를 넘어 가나안인들의 땅 두로와 시돈까지 가셨다. 흉악한 귀신 든 딸을 둔 어머니를 만났다. 유대 땅으로 예수를 찾아올 수 없는 가나안 여인이다. 그들은 삶의 자리에서도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얻지 못한 채 절망으로 버려진 인생이다. 거기에 예수께서 친히 찾아가신 것이다.

그 길이 예수의 길이다
이방인들의 거주지며 로마 황제를 위한 도시, 황제 숭배 신전과 제우스 신전으로 무장된 가이사랴 빌립보까지 친히 가셨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선포하게 하셨다.

구약성경에서 디아코니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דַבאָ)는 ‘섬김’과 ‘예배’를 동시에 의미한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두로의 무명인을 찾아가는 길, 경계와 울타리를 넘어 이웃의 길로 가는 것이 교회여야 한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함께 앉아 마음을 나누며 찬양을 부르는 곳이 성도의 모습이어야 한다. 검게 타버린 생활 터전에서 가슴 찢고 통곡하는 곳에 찾아가서 옆에 앉아 있는 것이 예수의 길이며 교회의 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회에서 이웃을 섬기는 것을 디아코니아 예배라 하였다. 세상 속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길을 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