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444)나는 포기해도 주는 포기 않는다

2025-03-26     이선학 목사 (부천지방 · 주사랑교회 원로)

은퇴를 4년 앞두고 조기 은퇴를 결심했다. 교회는 나를 원로목사로 추대해 주었고, 교회의 변화를 통한 발전을 위해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시 걷고 싶었다. 2016년 프랑스 생장 드 피오르드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걷는 동안 많은 은혜를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을 선택했다.

지난 순례길에서 얻었던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동트기 전 이른 새벽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 시간의 새벽길은 나에게 새벽기도회가 되었다.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어 찬양을 듣고 부르며 소리 내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다. 

기도는 항상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뉘었다. 첫째, 성도들이 나의 사직 소식을 이해해주길 기도했다. 둘째, 후임자를 위해 기도했다. 셋째, 나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걷는 새벽길에 매일 눈물이 흘렀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후임을 떠올리며 기도할 때,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눈물이 났다.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다. 1986년 서울신학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EMM 프로그램에 참여해 영어를 배우고 싶어 지원했다. 그 경험을 통해 선교사 제안을 받았지만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거절했다.

기도하는 새벽에 주님은 내게 ‘거룩한 짐’을 지우셨다. 순례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에게 내가 경험한 것과 단기 선교사로 나가 후배 선교사님들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도 이에 동의했다. 나는 어떻게 선교사님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주님이 주신 해답은 ‘한글’이었다. K-팝과 K-드라마로 인해 한글이 외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한글을 가르치며 선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자격증’ 취득에 대해 알아보았다. 내가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긴 했지만 3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년 후면 내가 70세가 되어 선교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한국어 교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성도들과 후배 목사님들을 돕기 위해 유익한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재에서 번역에 몰두하고 있을 때, 아내가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명예퇴직한 지 1년이 되었다. 통화가 끝난 후 아내는 나를 거실로 불렀다. 아내의 친구는 남편이 조기 은퇴 후 K국의 대학교 총장으로 가게 된다는 소식을 전하며, 우리 부부가 함께 도와주길 바랐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나는 포기했지만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K국의 대학은 미국 교포 의사에 의해 세워졌고,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한국어를 필수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자비량으로 선교하기로 결심했다. K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을 매우 좋아하고, 그 대학의 모든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게 되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학생들이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주님이 사랑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확신한다. 나는 4월 말에, 아내는 5월 말에 K국으로 떠난다. 인간적인 고민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이끌었다.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며 새로운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