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442)활천-책과 이야기
활천(活川)은 활천(活泉)과 이어질 수가 있다. 성결교인이나 김해 사는 사람 치고 활천(活川)이나 활천고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40년도 넘은 세월, 흙길이었던 활천고개를 넘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김해고등학교와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삼정동에 9년을 살았다.
직장 때문에 밀양으로 옮겨 살면서 그 김해가 내 속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장편소설 하날 썼다. 책으로 내지 않고 두었다가 한 출판사의 기획 출판으로 책이 나왔다. ‘활천(活泉)--활천(活川)’이다.
‘신어산에 올라’ ‘활천(活泉)--활천(活川)’ 등의 소제목을 사용하였다. 활천(活泉)이나 활천(活川), 살아있는 물이었다. 활천(活川)의 활천(活泉)이나 활천(活泉)의 활천(活川)이 될 수 있었다.
관심을 갖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길 찾아보기도 했다. 고개 하나 넘거나 고개 이름 하나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거리, 책 내용의 일부로 간단히 적바림해보자.
이서국 왕은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 아들 뇌질청예를 떠나게 하였다. 청년 뇌질청예는 성을 탈출하여 김해에 있는 도마를 찾아갔다. 아도간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도 도마의 앞에 엎드렸다.
도마는 그 청년에게 먼저 침례를 베풀고 김수로라는 침례명을 주었다. 오병이어의 깃발을 수로에게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 물고기 뜻의 이름 가야의 왕이 되었고 김수로의 나라여서 금관가야라고도 했다.
“구합니다 구합니다 우리가 구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되신 주님이시여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소서. 그렇지 않으면 적들이 와서 우리를 불사르고 죽일 것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가 구지봉을 흔들었다. 서기 42년 음력 3월 3일이었다. 축복의 땅 가야. 일찍이 철을 바다를 통해서 수출했던 나라, 가을이면 황금벌판에 곡식이 바다처럼 일렁이는 들, 김수로와 구간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김해는 은빛바다 물고기 이야길 품고 금빛 생명의 들로 떠올라 펼쳐지고 있는 사람의 땅이었다. 물고기 이야기는 바다만큼 땅만큼 깊고도 넓었다. 김수로 왕릉의 쌍어문, 허 왕후 능의 물고기 문양 비석, 활천(活泉)으로 솟아 활천(活川)으로 흐르는 물 등이었다.
가야는 드라비아어로 물고기, 그 물고기는 초대교회 기독교인들 사이의 암호로도 쓰였는데 침례의 의미도 든, 은혜의 생명어였다. 신어산의 물고기는 오병이어의 2마리 물고기, 배고픈 백성을 먹인 음식. 은혜의 생명어 쪽에서 보면 예수와 김수로일 수도 있고 김수로 대신 만백성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만백성의 상징, 만어산도 밀양 쪽에 있었다. 김수로가 지었다는 설이 있는 절이었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시기(3세기)가 아니어서 절이 아니고 교회나 기도처일 수도 있었다.
활천(活泉), 살아있는 샘으로 솟아올라 푸른 생명의 들 활천(活川)으로 흘러 가야로 깃들었다. 황금벌판바다 김해는 하늘의 땅의 사람의 활천(活泉)에서 가야로 이어 흐르는 활천(活川). 가야는 생명의 샘[泉] 내[川] 터였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위 이야길 거부하고 웃음거리 정도로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성결교단, 김해를 진정 사랑한다면 좀 깊이 숨은, 그런 이야기들을 듣거나 찾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