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지도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수 19:49~51)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은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덕상의 책임과 의무도 높다는 뜻 입니다. 노블레스라는 말은 닭의 벼슬의 의미하고, 오블리제라는 말은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으로, 닭의 사명은 벼슬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은 신분이 높은 귀족층일수록 평민보다 사명과 의무가 크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가나안땅을 정복하였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민족의 영웅으로 서열 1순위의 특권층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자기의 권리나 야욕에 한눈팔지 않았습니다. 초지일관 자신의 사명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나 직위에는 연연하지 않고, 오직 직책에만 충실했습니다.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제 신앙, 즉 자신의 신분에 맞는 사명감으로 사는 신앙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이 찾으시는 시대와 교회의 지도자상을 생각해봅니다.
첫째. 하나님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땅 정착 역사로서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과정을 보면 레위 지파에게 최상의 땅을 분배해주고, 그리고 유다 지파를 최우선으로 가나안 땅의 중앙 지역을 분할해 줍니다.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하면 우선순위가 분명하고, 원칙이 뚜렷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의 일’한다고 하면서도 ‘주의 일’은 뒷전이요 ‘내 일’을 앞세우기 일쑤입니다. 어떤 개인의 이익이나 사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리더십이 아닐 때 성도들은 교회의 지도자를 신뢰하고 그 리더십은 성공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과 형통의 비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에게 최상의 복을 주십니다(잠언 3:9~10. 마태 6:33).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주십니다(삼상 2:30).
둘째, 자기를 맨 뒤에 놓는 빈 마음과 동역자를 앞세우는 신앙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훌륭한 점은 자기의 동역자 갈렙에게는 우선권을 부여했으나(수15:13), 자신의 특권은 전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땅의 분배를 다 마감하면서 끝으로 자기 몫을 할당받습니다. 자신을 맨 후미로 두는 빈 마음의 지도자, 이것이 여호수아의 훌륭한 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음을 비울수록 마무리가 깨끗한 여운을 남기게 됩니다. 사람은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이 더 좋아야 합니다. 빈 마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영어로 Joy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이렇습니다. Jesus, Others, and Yourself. 예수님이 첫째요, 이웃이 둘째요, 나를 셋째로 놓을 때 흐뭇한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삽니다.
셋째, 하늘의 소명을 따라 사명감으로 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택한 땅은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로 거칠고 험준한 산지입니다. 남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메마른 땅이요, 피폐한 성읍이지만 이곳도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의 일부이기에 자기가 들어가 개척하고 재건하기로 사명감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사명감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기로 위대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서 살다가 그 땅에 묻힙니다(수24:30). 그는 110 세로 죽을 때까지 일평생 사명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고귀한 사명의식이 필요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금년 12월에 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리더십을 원하십니까?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의 리더십이 교회안팎으로 요구되는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