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돈 목사의 회심과 성결 체험 ⑥

2025-02-05     허 명 섭 목 사 시흥제일교회 · 교회사 박사

이병돈 목사는 1968년에 수원교회로 부임했다. 첫 주일예배에 45명 정도가 모였다. 350여 명이 모이던 은산교회에 비하면 너무 비루해 보였다. 이 사역지 이동에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있었다. 당시 수원교회는 기성과 예성으로 분열하는 과정에서 내분을 거듭하다가 4군데로 갈라져 나간 상황이었다. 그런 사정은 널리 알려졌기에 주변에서도 만류했고, 은산교회의 목회도 자족하는 마음이 커서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강하게 느껴졌고, 상처 받은 성도들을 치유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청빙을 수락한 것이다. 

부임한 교회는 비가 새고 너무 낡은 건물이었다. 목회가 정착되기도 전에 예배당 개축공사를 하게 되었고, 사택까지 신축했다. 60평의 예배당이 100평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교회의 분위기가 일신되며, 분열의 상처도 아물고, 관계의 안정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병돈 목사에게 고민이 찾아왔다. 100평 예배당에 100여명 안팎의 성도가 모여 예배하는 현실이 그를 지치고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는 38일 간의 금식기도를 작정했다.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져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개인적인 영적 부흥의 필요성을 느꼈고, 교회 성장과 부흥에 대해 애타는 목마름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금식기도를 시작하고 16일째 되는 저녁이었다. 군인들과 함께 행군하는 꿈을 꾸었다. 함께 행군하는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은 새 것 같았고, 바지의 주름도 방금 다려 입은 것처럼 빳빳하고 구김이 없었다. 신고 있는 군화도 번쩍번쩍 윤이 났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다른 군인들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모자의 뒤쪽은 터져 있었고, 얼굴에는 검댕이 묻어 있었다. 군복은 색이 바래고 낡았으며, 바지는 앞에 줄이 서지도 않고 구겨져 있었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바지의 오른쪽 바깥이 헤지고 터져서 종아리가 훤히 비치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화를 신었는데 운동화의 뒤축이 터져 슬리퍼처럼 신발을 질질 끌면서 행군에 동참하고 있었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모욕을 겪는 것 같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이병돈 목사는 그 광경을 보다가 놀래서 깨어났고, 그 꿈을 생각하며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여름 이불을 끌어안고 몸에 벽을 기댄 채 자신을 깊이 성찰하며 밤을 지새워 회개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기도를 마치고 문을 열어 하늘을 쳐다보며 감사의 찬양을 드릴 수 있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회개도 여러 번 했고 우직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자랑은 안 했지만 자랑스럽게 나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경건하고,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 모습을 보고 나서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채점하신 결과를 군복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아의 심연까지 터치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평가와 자신의 평가는 달랐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 부름을 받았는가. 하늘 군대의 병사로서 당신의 점수는 얼마나 되겠는가. 하나님의 채점표를 보게 된다면 당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은가.

하나님은 회개의 산제사를 드린 그에게 불세례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금식기도 33일째 되던 날이었다. 두 팔과 어깨 그리고 가슴에 성령의 불이 임했다. 팔을 베개에 올려놓으면 베개가 뜨거워지고, 팔을 이불 위에 올려놓으면 이불이 뜨거워지고, 팔을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으면 다리가 후끈후끈했다. 

이후 그의 사역에는 많은 환자들이 치유되는 표적이 나타났다. 손을 얹기만해도 축농증이 낫고 관절염이 낫고 치질이 낫고 온갖 질병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는 부흥을 경험하며 성장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는 부흥사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