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437)이 혼란한 세상, 동역자들을 위한 기도

양분된 사회, 화평과 덕을 세우고 주님 마음에 드는 뜻 찾게 하소서

2025-01-22     허상봉 목사 (대전동지방 · 동대전교회 원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동역자들이여! 

혼란스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성도들이 존경하는 성직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분열과 다툼, 적대적 대립각을 세우며 양분된 사회에서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목회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선하고 신실한 레위인들이 신앙의 방패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비를 지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초기 기독교 시대 교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자신을 통제하고, 신중한 처신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고, 양육하며 보호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섬기는 성직자로서 목회자는 공적 평판이 행실과 활동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8) 말씀하며, 이를 위하여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로 가는 디도를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고후8:18,19) 소개하였습니다.

어지러운 시대에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품격을 보여주는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말씀합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종이요, 사도이며, 선한목자로서, 항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깨끗한 양심으로 신앙의 신비를 간직한 성직자로서의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주님, 제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시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해 주시며, 당신 뜻에 최고로 맞는 것을 찬미하게 하시고, 당신이 귀하게 보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도록 해 주시며, 당신이 더럽게 보는 것들을 저도 하찮게 보게 해주소서. 저를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놔두지 마시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판단하지 않게 해주시며, 눈에 보이는 것과 영적인 것들을 올바로 식별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항상 당신 마음에 드는 뜻을 찾게 해주소서.”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기를 힘쓰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시대를 분별하여 성도를 바르게 인도하는 목자가 되기를 바라며, 혼란스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를 드리며, 실행하십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목회자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탐욕과 공명심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겸손의 도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비이성적인 현상 앞에서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의 저자 ‘가이 해리슨’은 ‘아브라함 링컨’이 “심판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글을 인용하여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아민, 캄보디아의 폴 포트, 구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독일의 히틀러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구원의 은혜를 바라보며, ‘프란시스코’가 꿈속에서 자기를 찾아온 한센병환자에게 불친절했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