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정선거론’은 그야말로 ‘음모론’이다
확증편향적인 사고에 갇혀 아무리 팩트를 제시해도 못 믿는 게 문제
우리 사회는 큰 사건마다 그럴듯한 음모론이 있다. 언로가 막혀 있던 군사정권시절에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자들에게 사회 불안하게 하고 혼란하게 한다며 ‘유언비어 유포죄’로 다스렸다.
지금은 유튜브 등을 활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가짜뉴스들이 유포되고 있다. 조회 수를 올려야 수익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내용을 올린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유명인을 죽었다고 썸네일(영상 타이틀)을 뽑기도 한다.
음모론의 특징은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런 영상을 본 사람들 대부분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영상을 자주 접하다보면 그 내용을 신봉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분별력이 중요하다.
사실, 정확한 팩트만 확인하면 ‘음모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 허위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먼저 ‘음모론’에 빠지면 확증편향적인 사고에 갇히게 된다. 그러면 아무리 팩트를 제시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고 있는 음모론 중 파괴적인 음모론 중 하나는 ‘공직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사람은 부정선거를 주장해왔다.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도 주장해왔다. 여기에 목사와 신학대 교수도 동조하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도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신봉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선관위를 조사한 국정원은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해킹 흔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
특히 통계 전문가로 통계청장을 역임한 유경준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지난해 제22대 총선이 끝난 후 윤 대통령을 만나서 부정선거는 없었고, 선거조작을 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못 믿는다. 유튜브의 영향이다.
심지어는 보수우익의 대표 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 조선’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에 전문가를 출연시켜 부정선거 음모론을 반박했다. 역시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전 주필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반박했다.
한 젊은 목회자는 “법원, 민주당 그리고 부정선거 세력, 조중동 그리고 방송사 등도 모르는 척 음모론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묻고 싶다. ‘법원도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판단했고, 보수언론인 조중동도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판단했다며, 더욱이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조사결과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믿고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가.’
우리나라 공직선거(총선, 대선, 지방선거)의 개표는 수개표가 기본이며 분류기 등의 기계 장치로 도움만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 실시된 제22대 총선에서는 수검표 절차가 30년 만에 다시 도입됐다. 더욱이 사전투표, 본 투표, 개표와 수검표에는 선거 후보자를 낸 각 정당의 참관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투개표 종사자(각 정당 참관인 포함)가 34만 명이다. 서버조작 또는 전자개표 등 선거조작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선거 증거라고 주장하는 웹 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22대 총선에서 하남시갑 지역구 부정선거론이다. 하남시갑은 민주당 추미애 후보와 국민의힘 이용 후보가 대결했던 지역구다.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하남시 신장1동 인구수(유권자수)는 6950명이고 선거인 수는 6467명이다. 그런데 투표수는 7179명이었다. 어떻게 선거인수보다 투표수가 더 많을 수 있는가 라며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2일 하남시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로 문의를 했다. 담당 직원은 “하남시갑 선거구는 신장1동을 포함해 10개 동이다. 그런데 사전투표는 자신의 집 주소지에 있는 관내 투표소에서 뿐만 아니라 10개 동 중에서 투표하기 편리한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있다. 신장1동 선거인을 포함한 10개 동에 거주하는 유권자 중 신장1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한 숫자를 포함한 것이다. 그래서 투표수가 선거인수보다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10개 동 중 추미애 후보가 승리한 곳은 유일하게 감일동이라는 것을 부정선거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감일동에서 추미애 후보는 60.09퍼센트, 이용 후보는 39.90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런데 감일동에서 추미애 후보의 표가 많이 나온 것은 집 주소지를 감일동에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선거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지역구는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다.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영등포을 선거에 김민석 후보(민주당)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박용찬 후보가 대결했다. 김민석 후보가 승리했다.
박용찬 후보는 선거가 끝난 후 5월 1일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고, 다음 해인 2021년 8월 30일 실시된 재검표에서 투표용지가 신권지폐처럼 빳빳하거나 좌우 여백이 다르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후보는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도 김민석 후보에게 패배했다. 박 씨는 지난 7월 국민의힘 최고위원선거에 도전하면서 부정선거 특검과 선거제도개혁특위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형상기억종이’ 투표용지론이다. 그들은 중앙선관위가 투표용지를 설명하는 홍보영상에서 ‘형상기억종이’라는 말을 했다가 논란이 되자 그 영상을 삭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형상기억종이’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형상 기억(Shape Memory)’은 특정 물질이 물리적 변형을 겪은 후, 열, 자극, 또는 외부 환경 변화에 의해 원래의 형태로 복원 되는 성질을 뜻한다고 한다. ‘형상 기억(Shape Memory)’ 중 ‘형상 기억 합금(SMA)’은 니켈-티타늄(NiTi) 합금 등 금속 재료로, 열에 의해 형태를 복원하는 성질이 있으며, 주로 의료용 스텐트나 항공 우주 분야에서 활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형상 기억 고분자(SMP)’는 특정 온도 이상에서 유연하게 변형되고, 냉각되면 원래 형태를 되찾는 고분자 재료로 주로 스마트 섬유나 생체공학 분야에 사용된다고 한다. ‘형상 기억’은 금속이나 특수 고분자에서 주로 나타나며, 종이와 같은 셀룰로오스 기반 재료에서는 거의 연구된 바가 없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부정선거론자들은 중앙선관위가 ‘형상기억종이’를 사용한다며 영상 홍보까지 제작했다가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한 인터넷매체가 2024년 12월 22일에 보도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보면 “2020년 21대 총선 개표현장에서는 새 책처럼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 뭉치들이 전국에서 발견됐다. 이중에는 접힌 흔적이 있는 뭉치도 섞여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두고 ‘원상복원기능이 있는 특수 재질’이라고 영상까지 제작해 반박했다. 그런데 논란이 커지자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유명 앵커가 직접 ‘원상복원기능이 있는 특수재질을 사용한다’라는 말까지 했다. 최근 이 영상은 삭제됐다. 구체적 금액은 확인이 불가하지만, 해당 영상은 최소 수천만 원을 들여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은 추후 ‘형상기억종이’로 바뀌면서 회자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최근 한 국민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기한 ‘형상기억종이’ 민원에 대한 답변이 인터넷커뮤니티를 타고 공개됐다”며 “이 답변 내용을 보면 ‘투표용지는 기표용구 번짐 최소화, 개표소 분류기 사용 시 잼‧더블피드 발생 최소화, 정전기 예방 등을 위해 특수용지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특수용지는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쇄용지에 비해 두께감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복원력이 좋은 편이나 형상기억 기술이 적용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어 “선관위는 ‘민원에 첨부하신 영상은 ‘투표지에 접힌 흔적이 없다’는 다수 민원 내용에 대한 우리 위원회의 답변내용 중 일부로, ‘투표용지는 상대적으로 복원력이 좋은 특수용지를 사용한다’는 의미로 게시한 것이나, 영상 게시 후 ‘형상기억종이’를 투표용지로 사용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 해당 영상을 내린 상황‘이라고 했다”는 중앙선관위의 해명을 소개했다.
또한 “그러면서 ’개표소에서 투표지를 펴서 정리하는 과정, 투표지 보관 기간 등에 따라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시점에서는 접힌 자국이 완화될 수 있어 외관상으로는 투표지에서 접힌 흔적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공직선거 투표용지와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공직선거 종이는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가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데, ‘한솔그룹 네이버 블로그’에는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두 3월 8일 다음과 같은 홍보 글이 올라와 있다.
“한솔제지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용지를 공급합니다. 투표용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 쓰이는 만큼 첨단 기술이 적용됩니다. 일반적인 인쇄용지인 백상지가 아닌 특수 코팅지로 제작하며 까다로운 품질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생지인 동시에 매끄러운 정도인 평활도, 인주 흡수성 등이 우수해야 합니다. 한솔제지 투표용지는 친환경 인증 받은 재생지로 제작 평활도, 인주 흡수성 등 우수한 특수 코팅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투표용지는 “일반적인 인쇄용지인 백상지가 아닌 특수 코팅지로 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3일 중앙선관위에 ‘중앙선관위는 형상기억종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가’, ‘만일 형상기억종이라는 말을 했다가 그런 적이 없다고 번복한 적이 있는가’를 문의했다.
중앙선관위 담당자는 “중앙선관위에서는 형상기억종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더 이상의 의혹제기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특히 투표용지에 대한 문제는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에 문의하면 투표용지로 사용된 종이의 특질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 중에는 ‘북한 해킹설’이 있다.
국정원과 중앙선관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는 2023년 7월부터 9월까지 중앙선관위의 보안시스템에 대한 합동 점검을 실시했다. 국정원은 한 달 후 △국정원 컨설팅 결과 모의 해커 △선관위 시스템 침투 성공 △선거인명부․, 사전투표․ 개표결과 조작 가능 △북한 해커 악성코드로 대외비 문건 유출 △선관위 5%만 점검해 부정선거 판단 불가 등 ‘중앙선관위 보안정보시스템 컨설팅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즉각 반박 자료를 발표하고 “국정원의 보안 점검은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여러 장치를 배제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한정해서 실시했던 것이며, 설령 기술적으로 해킹이 가능하다고 해도 실물 투표지를 바꿔치기하는 게 아니라면 선거 결과를 조작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선관위는 또한 국정원이 지적한 취약점에 대해 선관위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모두 보완을 마쳤으며, 지난해 초 두 차례나 보완 사항에 대해 국정원으로부터 추가 점검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외부 전문가들을 불러 보안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한 차례 더 점검을 받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관련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12일 발표한 담화에서 부정선거를 언급하자 곧 바로 선관위 시스템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한 흔적은 찾지 못했다는 내용을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언론이 보도했다.
국정원은 국회의 요청에 대한 보고에서 과거 북한이 선관위 직원의 이메일을 해킹해 대외비를 포함한 일부 업무자료가 유출되는 등 선관위의 보안 시스템이 다른 기관보다 취약하다고 판단했을 뿐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해킹으로 선거 시스템이 침해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간첩 잡고, 산업스파이 잡는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의 조사결과를 믿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법원의 판단을 믿지 못한다면 어디에다 판단을 맡기겠는가. 그리고 조선, 중앙, 동아 같은 언론과 방송은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보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무슨 근거로, 무엇을 믿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할까.
조갑제 ‘월간 조선’ 전 대표는 한 방송에 출연해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저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음모론, 주술, 이런 것은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사람이 거기서 벗어나는 걸 저는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유튜브 등을 계속 보다보니 그렇게 믿어져버렸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인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선거 음모론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믿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갑제 전 대표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