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1434) 상한 갈대라도

2024-12-24     한국성결신문

▨…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뿌리 깊으면야/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중략)/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1948-1991) 시비에 기록된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의 제1연과 제3연이다. 신학을 공부한 시인답게 제목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체취가 물씬 풍기고 있음을 뉘라서 부인할 수 있을까. 어느 성결인께서 말씀하셨다. “시는 잘 모르지만 마지막 연의 ‘마주잡을 손 하나’에서는 예수님의 못자국이 선연한 손이 연상되어서 시를 읽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고정희씨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제 그 대답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 성탄절을 맞으면 우리는 무슨 기계처럼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상상하고 맞이할 준비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 다짐은 반복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는 단 한 번, 태어나시고 죽으셨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 일은 여러 번 되풀이될 수 있는, 반복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역사 속에서 활동하셨고 그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증거되어졌다.

▨…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인 성육신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현존을 증거하셨다. 본회퍼는 증언한다. “나는 인간 예수가 동시에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는 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인간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론 )

▨… 우리 성결인들의 신앙은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음을 바라보는 시의 세계를 긍정한다. 동시에 우리는 창조와 하나님 나라의 완성 사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현재함도 믿는다. 그렇다. 그리스도는 역사 안으로 성육신했고 역사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러므로 신학이 우주적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조화를 모색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만 있을 것을 고집하며 그 사명과 역할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는 한사코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