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이드 러너”
(롬 8:26~28)
‘가이드 러너’(Guide Runner)라는 말을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시각장애인이 육상경기를 할 때 곁에서 함께 달리는 러닝메이트를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장애인이 스포츠 경기를 할 때 곁에서 돕는 비장애인을 말한다. 한마디로 장애인 선수 곁에서 돕는 자가 ‘가이드 러너’이다.
2018년 우리나라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 고운소리 선수와 양재림 선수가 한 팀이 되어 알파인 스키경기에 출전했다. 양재림 선수의 한쪽 눈은 시력이 없고, 한쪽 눈은 10%의 시력이 남아 있다. 그래서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선수가 앞서 가고, 시각장애인 ‘양재림’ 선수가 그 뒤를 따라 활강을 했다. 고운소리 선수가 시각장애를 딛고 엄청난 속도로 활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앞서가는 가이드 러너가 무선 마이크로 코스 상태, 게이트 위치, 적절한 속도 등을 수시로 알려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가이드 러너는 장애인 선수 곁에서 ‘돕는 자’ 역할을 한다. 그런데 경기 종목마다 가이드 러너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스키나 사이클은 앞서 가면서 장애인 선수를 이끌어 주고, 달리기나 마라톤은 손목에 끈을 묶고 옆에서 함께 달린다.
또 다른 경기는 뒤에 서서 목소리로 방향을 잡아 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두 선수의 호흡이다. 특히 마라톤과 같은 경우에는 거의 4시간을 함께 달린다고 한다. 때문에 호흡이 틀어지면 메달은 고사하고 완주할 수도 없다. 운동회 때 많이 하는 ‘2인3각 경기’처럼 마음만 앞선다고 1등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호흡이 맞아야 하고, 발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호흡을 맞추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서로를 향한 “신뢰”이다. 가이드 러너는 장애인 선수를, 장애인 선수는 가이드 러너를 신뢰해야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험난한 인생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가이드 러너가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우리 인생에는 참 좋은 가이드 러너가 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가이드 러너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함께 하겠다. 내 너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말이다. 보혜사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의 경주에서 실패하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신앙생활은 하지만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이드 러너가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론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 때도 많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짜 어려움이 닥치면 솔직히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내가 힘들고 아플 때, 내가 외로울 때, 주님은 어디에 계셨죠?”라고 불평을 토로한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내 앞에서, 내 옆에서, 내 뒤에서 나와 함께 계셨다. 때로는 이 길이 맞나 싶을 때가 있고, 지금 제대로 가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는 이유가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내 인생의 가이드 러너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참 많이 어려운 때이다. 교회들은 여전히 힘이 든다. 설상가상으로 예기치 않은 ‘정치적인 혼란’도 겪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의문이 든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기억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혼자라고 생각될 때! 그래서 다 포기하고 싶을 때! 우리 곁에는 우리를 체휼하시는 주님이 계신다.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분이 있다. 그분이 우리 인생의 영원한 가이드 러너, 예수님이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너희가 주라’(요6:44)고, 누군가의 가이드 러너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이 더욱 필요한 성탄의 절기, 임마누엘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의 이웃에게 한 걸음 다가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