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혼은 평안합니까?

혼자 잠잠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합시다

2024-12-11     하도균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전도학)

나의 영혼은 평안합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질문이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는 영과 혼과 육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육체와 정신적인 건강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여기서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영과 혼이 합쳐진 단어인데,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내면을 가리키며, 영적인 것에 더 치중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내면에 중점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면을 변화시켜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새 언약을 맺어주시며 약속하신 핵심 내용이,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겔 36:26)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때는, 우리의 힘으로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어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입니다. 

시편 62편을 보면, 시편 기자는 이와같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아마도 다윗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도 사울 왕 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큰 고통과 위기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시편 62편도 그와 같은 위기 상황속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위기 상황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잠잠히 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다윗은 내면의 건강함이 인생의 요동함을 막고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왕이 되기 전, 광야 학교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잘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것을 삶의 여러 상황에서 실제적으로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현실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렇다면, 내 영혼의 건강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습니까? 내 내면이 건강한지는 어떻게 체크할 수 있습니까? 이 두 질문에 관한 답으로 한 단어를 말하자면, ‘잠잠히’입니다. 시편 62편을 보면, 시편 기자는 “잠잠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잠잠히’라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내려놓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야 내면이 비워져야 잠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과 잠시 단절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일상과 잠시 단절할 때, 우리의 내면은 바쁜 일상에서 탈출하여 고요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시간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섰던 시간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적용하면, 홀로 있는 시간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을 갖지 않는 한 우리의 영혼을 돌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분주할지라도 홀로 주님 앞에 서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하시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새벽녘에, 오병이어의 기적 후 사람들을 돌려 보내신 후, 혼자 하나님 앞에 서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 없이는 어떠한 능력도, 어떠한 구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홀로 있는 시간, 잠잠한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혼자 잠잠히 나의 내면을 하나님께 향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모든 구원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시편 62편을 보면, 시편 기자는 ‘잠잠히’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잠잠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바랐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틀어서 그 앞에서 고요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나의 영혼이 불안하고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나의 구원이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홀로 잠잠히 정리된 내면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틀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 내면은 안녕하십니까? 대림절이 시작된 12월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문제에 해답을 가지고, 세상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지만, 아직도 세상과 사람들은 문제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주님을 지속적으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홀로 있는 시간, 내면의 잠잠함이 필요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