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돈 목사의 회심과 성결 체험 ①
중생(Regeneration)은 기독교 교리 중에서 근본적인 것으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것과 관계된다. 존 웨슬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 안에서 일으키시는 큰 변화이다. 이것은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아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사랑함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교만은 겸손으로, 혈기는 온유 … 변화되는 것이다.”([중생]). 중생의 은총은 인간의 영혼과 본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자기 사랑의 경향성을 가지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던 사람을 하나님 사랑의 경향성을 가지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중생의 은혜는 일생 단 한번의 사건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전환점인 것이다.
이병돈 목사(1935-2016)가 거듭남의 은혜를 경험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은산교회(1914)의 초대 신자였던 조부모와 부모의 영향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은산교회가 40평이 넘는 새 예배당을 건축할 때, 온 가족이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정도로 주의 일에 힘쓰는 가정이었다. 할머니의 기도는 가족과 교회의 기둥과 같았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훗날 그도 역시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가족의 중보기도를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여겼다. “나는 45년 동안 목회하고 있지만 내 목회도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에 큰 힘을 받고 있다. 내 자신도 기도를 많이 하는 목사로 생각하지만, 내 목회를 내 기도로만 감당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기도와 우리 할머니의 기도, 우리 부모님들의 기도가 내 목회를 돕고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
그런데 그런 그도 기도의 문제로 시험에 크게 빠진 적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가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인적 자원이 많지 않았던 시골교회의 현실이었다. 교사가 된 후 교회학교 예배에 두 번째로 참석했을 때였다. 갑자기 사회자가 “이병돈 선생, 기도하시오”라고 했다. 그 가족의 신앙 경륜을 볼 때 그가 기도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대표기도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대표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교사직을 맡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기도를 못한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엉겁결에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예수님 주여 …” 이렇게 세 마디를 하고는 기도는 중단되었다. 가슴이 뛰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끙끙거리다가 한참 만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기도를 마쳤다. 그 부끄러움이 얼마나 크고 망신스러웠는지 교회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은 없고, 여선생들이 그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자신에게 기도시킨 부장이 원수처럼 미웠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고 기도를 시켰다는 이유 때문에 부장이 지독하게 미웠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안절부절할 정도로 괴로웠다.
그런데 오후 늦게 부장이 교사 4명과 함께 사과하러 찾아왔다. “사람을 망신시키고 무엇 하러 왔느냐? 그만 돌아가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런데 부장이 그의 두 다리를 끌어안으면서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며 사정을 했다. “앞으로 이병돈 선생을 절대 기도를 안 시키겠으니 학생들을 보살피는 교사직만은 계속 해 달라.” 그제야 그도 마음을 풀고 부장선생에 대해 품었던 섭섭한 마음을 풀었다.
이 사건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기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기도를 은혜롭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고, 큰 은혜의 체험이나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도 너무 부러워보였다. 그런 사람의 영적인 상태나 부흥의 체험을 빼앗고 싶을 정도로 그에게도 영적인 욕심이 생겨났다. 그 와중에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사모하게 되었고, 갈급한 마음의 소원으로 삼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