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묵상) 이웃과 감사 나누는 축제
추수감사주일은 우리가 일 년 동안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분들은 ‘왜 추수감사주일을 지켜야 하느냐?’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만 추수가 아니라는 사실 쯤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를 할 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는데, 이것도 꼭 양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를 살 수 있는 건강과 지혜와 안전함, 모든 능력이 ‘일용할 양식’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통해 한 해 동안 주신 은혜를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게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청교도 102명은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올라, 60여 일의 항해 끝에 동년 11월 20일 지금의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상륙했습니다. 그해 혹독한 추위로 겨울에 44명이나 죽었지만, 원주민 와마노아그 족의 도움으로 농사와 사냥을 배우고, 옥수수를 얻습니다. 생존자들은 이듬해 가을에 첫 추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이웃인 원주민들을 초대해 사흘 동안 추수한 곡식과 채소, 과일 등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원주민 추장은 칠면조와 사슴 등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어떤 이는 한국의 좋은 명절인 추석이 있는데, 왜 외국 명절인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하나님께만 향한 감사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추수감사주일을 지킨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많은 대가를 지불하며 추위와 굶주림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서도 진정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신앙을 우리는 기억하고 본받아야 합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우리의 형편을 채워주시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해주신 것을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통해 청교도들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께 감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좋았던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당장 급한 일만 바라보고 쫓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기억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 일들이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일을 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하더라도, 감사가 없다면 위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한 일이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한 일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위대하게 사는 것은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집에 있는 모든 물건, 친구들, 자녀, 내 인생 모든 과정이, 역경이, 시련과 고난이,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한 것은 원하시지만, 우리가 교만한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이 메시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위대합니다. 가장 위대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추수감사주일에 우리는 일 년 치의 감사를 합시다. 한 해 동안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감사를 표현할 때는 수직과 수평의 조화를 이룹시다. 구약의 제사에도 감사제와 화목제가 있었습니다. 감사제는 곡물과 포도주, 떡 등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를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화목제 역시 희생제물의 일부는 하나님께 불로 태워드리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 드리는 사람이 가족과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두 제사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감사와 평화를 중시하며, 이를 통해서 이웃과 친교를 나누고 화목을 다졌습니다.
처음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이웃인 원주민들과 나누었던 청교도들처럼, 감사제와 화목제를 드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러분의 이웃들과 감사를 나누는 축제가 벌어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