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는 세상에서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 유튜버들의 사냥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적지 않은 교회가 성장과 부흥의 여망이 가라앉고, 존립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약 80%를 차지하는 미자립 소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존폐를 고민하며 존립의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때에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는 목회자들의 헌신적인 노고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애쓰는 거룩한 헌신에 도전과 감동을 한다.
조선시대 말에 선교사들에 의하여 복음을 전수받은 한국교회는 민족의 수난기에 동반자로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힘써 왔다. 복음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의 사랑, 박애, 평화, 자유, 민주정신을 구현하며 전통적이며 봉건적인 사회제도를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로 하여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참여하려는 정신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는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사회의 올바른 가치 보존을 위하여 무관심하고, 교회 내의 부조리와 역기능은 교회의 거룩한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하여 교회의 정통성을 폄훼하고, 교회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며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행태를 보인다. 누구의 책임일까?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는 3·1운동을 위시해서 신사참배의 거부에 이르기까지 민족자존의 정신을 기독교 신앙에서 실현하였다. 사회 각 계층에 복음을 전파하며 구령 운동과 함께 민주, 자유, 평화를 외치며, 사랑을 실천하면서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치고, 계몽하였다.
한국교회 초기 교인들은 신앙을 생활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사회적 관심으로 연결되어 근대적 의미의 사회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구습을 타파하고, 근면 정신을 길러 주었으며, 특히 술, 담배, 아편을 금하는 운동을 벌여 생활의 혁신(革新)을 가져오고, 오랫동안 내려온 각종 미신과 유교적인 구습과 남존여비의 사상을 타파하고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시켰다.
한국사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교회는 교육 사업, 의료 사업, 아동복지 사업, 양로 사업, 여성복지 사업, 맹·농아 사업, 구라(救癩) 사업, 그밖에 YMCA, YWCA 등 청년 단체에서는 교육, 그룹 활동, 계몽 집회, 상담, 사회봉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한 기독교 사회사업의 일익을 감당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각종 개혁의 모습이 개화의 물결과 함께 교회에 의하여 활발하게 전개됨으로써 교회는 민족의 위로와 희망이 되어 역사의 원동력이 되고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산실이었었다. 이러한 사명과 역할을 주도한 목회자들에게 감사드린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역사는 하나님과 우리 민족의 만남의 역사이며, 시련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민족 속에 실현해 가려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사였으며, 전쟁의 폐허 위에 경제적 성장을 견인한 동력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민족 복음화를 위한 교회부흥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성장하는 만큼 성숙하지 못한 면모로 인하여 ‘기독교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는 이미지가 대중화되는 성장통도 겪었다.
그런데도 교회의 이웃과 사회를 위한 사업은 예수님의 박애 정신을 뿌리에 두고, 복음 전도 과정의 한 양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 결과 교회의 사회 활동이 복음 전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겸허하게 받으며 새로 복음적 사명을 감당하자!
이제, ‘남은 자’의 사명을 갖고, 초기 기독교 시대에 교회를 일구며 사회를 개혁한 선배들의 헌신과 전통을 기억하고, 사회적 성결을 기반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명을 자각하고 실행하는 성숙한 교회를 이루어 가기를 희망한다.
부패한 사회를 걱정하며 세상을 주도하는 교회의 역할 감당하기를 기도하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