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425) 성도들이 광장에 모이는 까닭은?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대의명분 살리려면 특정 정치집단 동조나 권력편승은 안되고 여론 관심갖게 정확한 메시지로 호소해야

2024-10-15     이성준 목사 (서울남지방 · 수정교회)

광화문 광장에 큰 숫자의 성도들이 모일 예정이다. 매스컴도 기민하게 반응할 것이고, 왜 모였는지를 주목할 것이다. 그 때 그 모임의 목적이 ‘악법 저지를 위한 것’임을 인지할 것이다. 그리고 질문할 것이다. 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 동성혼, 차별금지법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선진국을 비롯해서 세상의 흐름이 다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왜 그렇게 유난을 떨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숫자는 영향력이 있다. 큰 무리가 모여서 기도할 때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단상에서 외칠 때 그 외침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할 것이다. 멀리서 버스까지 대절해 원근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주일에 한 마음으로 모일 때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구별된 모임이 되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은 ‘집회의 성지’ 같은 장소가 되어왔다.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는 온 국민의 마음이 하나 되는 장소였다. 촛불집회에서는 나라를 정상화시키려는 마음이 모인 곳이었다. 그런 광화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모였을 때 기존의 모임이나 집회와는 다른 구별됨이 있어야 한다. 

무질서한 구호와 파괴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질서 있는 움직임, 건설적인 주제와 구호, 나라의 미래를 위한 건강한 제안과 진정성 있는 호소가 넘치는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정치적 행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좌우의 이념 대립이 아직도 심한 나라이다. 그런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이용한 정치권의 편가르기도 자주 일어난다. 성장과 분배, 구세대와 신세대, 성 역할 문제, 지역 차별 등 현재진행형인 대립의 소재들이 많고 그런 주제에 편승한 정치적인 편가르기가 수시로 일어난다. 이 모임이 그런 정치적 선동가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악법과 악습에 저항하는 것이지, 어떤 정치적 집단에 동조하거나 권력에 편승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단 정치의 개입도 차단해야 한다. 순서를 누가 맡고, 중요한 역할을 어떤 교단에 맡길 것인가와 같은 문제는 내려 놓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하고 그 역할에 가장 적절한 사람, 하나님의 감동이 임한 사람에게 순서를 배정해야 한다.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교단이나 단체의 순서가 밀린다 해도, 단상에 자리가 없다 해도 신경 쓰지 않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런 대우와 의전, 예우가 사라진 모임이 되어야 한다. 

지금 현 사태에 대한 한국 교회의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성도들의 결단이 동반되어야 한다. 은밀히 진행되는 악법 제정으로 인해 무너질 미래상과 자녀 세대가 겪게 될 현실을 설득력있게 보여 주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다. 광화문에서 성도들의 결단과 결집된 힘을 보여주는 이면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할 때 적절히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의 향방을 주도하는 언론을 향해 잘 준비된 보도자료를 미리 만들어 유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하고 설득하며 여론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사회가 관심을 갖도록, 지금 일어나는 이상한 법 제정의 진짜 의미에 주의를 환기 시키는 잘 정돈된 대 사회적 메시지가 준비되어야 한다. 성도들이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광장에 나온 진짜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세력 과시’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건강한 울타리를 좀먹는 포도원의 작은 여우를 잡기 위해 나온 것임을 대 사회적으로 강력히 일깨워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