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1421)‘아직’이란 단어가 참 좋다.

2024-09-11     한국성결신문

▨… ‘아직’이란 단어가 참 좋다. 하나님 나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는 성서신학의 명제처럼(오스카 쿨만. 그리스도와 시간) 남아 있는 희망과 용서의 은혜가 깃드는 느낌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므로, 이미, 이제는, 절대로라는 차가운 표현을 습관처럼 쓴다. 절망적인 순간 그러나, 아직, 앞으로는, 그래도 등과 같은 따뜻한 말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 이문세는 아직이란 말을 사용하여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 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렇게 노래하였다(광화문 연가. 1988). 그가 노래한 교회당은 한국건축문화상을 비롯한 12개의 상을 받은 100주년 기념관이 아닌 아펜셀러에 의해 건축된(1887) 붉은 벽돌의 빅토리아식 옛 건물 벧엘 예배당이다. 재개발, 명품, 비싼 것이 지상의 가치인 시대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영속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속설이 있어 기피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문세는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라고 희망을 노래한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던 국제극장도, 사랑했던 이들이 이 길 끝에서 헤어져야 했던 가정법원도 흔적도 없이 변해가고, 세월을 따라 떠나가는 정동길에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 아직 남아 있다고 세 번이나 반복하는 까닭이 어디 있을까. 

▨…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오는 까닭은, 그리고 눈 덮인 예배당이 아직 있음에 안도하는 그의 가슴에는 영원한 고향을 찾는 나그네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지금 우리의 신학교에 크고 화려한 건물이 아닌 교회가, 강의실에는 학문이 아닌 하얀 눈 내리는 순수한 복음이, 교단의 임원과 총회 본부 직원들의 가슴에, 목회자와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 눈 내리는 작은 교회당이 있었으면.

▨… 시대의 흐름과 현대사회의 구조가 낭만적인 옛이야기나 읊으며 순진하게만 살 수 없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 가운데 생산과 풍요, 쾌락과 승리의 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을 남겨 놓았다고 하셨다(왕상 19:18). 바울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시대인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Remnant)가 있다고 하였다(롬 11:5). 내가, 우리 목사님이, 우리 교회가, 성결교회가, 한국교회가 아직 남아 있는 자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