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1420)카라마조프가의 이반은

2024-09-04     한국성결신문

▨… 카라마조프가의 이반은 부모의 명령으로 밤새 추운 옥외 변소에 갇혀야 했던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알료샤에게 들려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뜨끔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 어린 소녀가 꽁꽁 얼어붙은 작은 가슴을 두드리면서 ‘온유하신 예수님’에게 이 끔찍한 곳에서 자기를 구해달라고 기도했을까? 그러니까 그 소녀가 옥외 변소에서 얼어 죽어야 이 세상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평화를 얻는다는 약속이 있다면 너는 그 약속을 받아들이겠니?” 알료샤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옥외 변소에 갇혀야 했던 어린 소녀 이야기를 들먹이는 것은 초점이 어린 소녀에게 맞추어져 있기 보다는 “딸이 밤새 울어대는데 부모라는 작자가 편히 잠자는 모습을 너라면 그냥 바라볼 수 있겠니?”라는 이반의 질문 속에 숨어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제정 러시아의 교회들은, 니체의 지적처럼 “예수가 명령한 행위를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는” 잠자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 마침내 4년의 형기를 채운 도스토옙스키는 감옥을 나왔지만 4년의 강제 군복무가 기다리고 있었고 제정 러시아교회는 ‘신 없는 세상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었다. “족쇄가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것이 내 발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하나님의 은총과 함께! 자유, 새로운 생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가!” ( 죽음의 집의 기록 )

▨… 자신의 삶의 체험을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라는 신앙적 용어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그리스도는 그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삶의 체험으로 확인한 사람 아니겠는가. 죽음에서의 부활은 논리로 증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증거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사람이라면 기적이 신에 대한 신앙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신앙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임을 확인하게 되지 않겠는가.

▨…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 밖에 있다고 증명해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남는 쪽을 택할 것이다”라고 밝힌 도스토옙스키는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단어이자 개념이며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구원을 얻을 것”으로 이해된다고 김형진은 도스토예프스키 만나다 에서 밝혔다. 우리 성결인들의 신앙도 그만큼 성숙되었을까. 궁금해지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