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1419)자녀양육, 상처가 있어야 사랑이다

2024-08-28     이성범 장로 (충북지방 · 동신교회 원로)

얼마 전 원주로 시집간 딸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손자가 친구들과 학교에서 운동하고 돌아오다 바지가 조금 젖었는데 호기심에 상가에 설치된 무인 세탁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내용이 심각하다. 

“주위 사람들이 주인한테 연락해서 주인이 급히 달려와서 막 야단치고 했데. 물론 윤이가 주인에게 정말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화가 많이 나서 부모님한테 연락이 온거야, 그래서 허겁지겁 가서 주인한테 ‘정말 죄송합니다. 엄마인 제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고 빌고 혹시 세탁기가 고장 났으면 전액 보상해 주겠다’고 말씀드리고 윤이도 거듭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었고 나도 수없이 그랬어. 세탁기 수리비를 꼭 알려달라며 사정하고 겨우 윤이를 데리고 왔어. 애가 왜 이래? 남의 물건에 손을 왜 대느냐구?”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딸의 마음은 이해가 되었다. 호기심에 분별력이 약한 손자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은 잘못이다. 우리 내외는 곧장 제천에서 차를 몰고 딸집으로 갔다. 

속상해 울고 있는 딸과 겁에 질린 손자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손자에게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고는 방으로 들여보냈다. 

딸에게는 별도로 위로의 말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아내 뿐이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어 고생많았어, 하지만 어떻게 하겠니. 부모란 다 그런거야,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다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니? 그래도 감사하지, 세탁기에 들어갔다가 문이 잠기어 나오지 못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우리는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없더라. 주인한테는 매우 죄송하지만 양해를 구하고 수리비는 넉넉하게 드리면 되고 윤이에게는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깨워 주면 되지만 말이야. 우리 모두 감사하게 생각하자”며 아내가 딸을 달래주었다. 

그후 며칠이 지나도 주인에게 전화가 없어 조심스럽게 연락드렸더니 다행히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딸이 며칠 전 작은 과일바구니를 가지고 그 상점을 찾아갔으나 주인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나도 아이를 키우는 데 다 애들은 그런거”라고 하시며 오히려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셨다고 한다. 마침 윤이가 옆에 있어 전화로 다시 한번 사과했더니 오히려 주인이 아이를 격려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고 비오는 날에는 빗방울에도 상처가 있다. 소나무가 송진의 향을 내 뿜으려면 몸에 상처가 나야 한다. 

이렇듯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그 아픔을 참고 견디는 것이 부모다. 부모는 참을 수 있다. 그들은 성숙한 어른이며 경험이 많다. 무릇 자식의 상처를 부모가 온전히 껴안을 때 그 부모는 부모다워 지는 것이다. 

자식은 오늘도 수많은 상처를 이겨낸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먹고 자란다. 오늘따라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TheodoreRoethke)가 ‘상처가 있어야 사랑’이라고 한 말이 가슴을 저며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