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

2024-08-21     신윤진 목사 (인천남지방·신성교회)

남유다 사람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인종의 순수성도 잃고 신앙의 순수성도 잃은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그 사마리아에서도 작은 동네 수가라는 곳을 지나가십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이 볼 때는 파격적이며 도발적인 행보입니다.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빠르게 통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수가라는 마을로 들어가셨고 우물곁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사람이 옵니다. 한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여인은 이날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의 반전을 경험합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 발로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자신이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와 보라고 전도합니다. 

우물의 의미를 돌아보면 첫째로 역사가 있는 우물입니다. 2천 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샘이 솟았던 우물입니다. 창세기 33장을 보면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와 형 에서와 극적인 화해의 상봉을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숙곳에 가축들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고 살다가 드디어 세겜 성읍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세겜 사람에게 밭을 백 크시타에 삽니다. 세겜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던 그 땅입니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지요.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증거가 야곱의 우물입니다.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 그 우물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고 그곳에 사마리아 여인이 옵니다. 예수님에게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2절). 이곳에서 예수님은 육신의 목을 축이셨고 여인은 영혼의 목을 축입니다. 이 우물이야말로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나그네와 지친 사람들의 목마름을 적셔 준 역사적인 우물입니다. 

둘째, 이름값을 하는 우물입니다. 야곱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에서에게 장자권을 빼앗고, 축복권을 쟁취한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꿈을 주십니까? 

자신만 알던 야곱에게 동서남북의 비전을 주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 즉 열국이라는 비전입니다. 이제 누구에게나 축복의 샘이 된 인물이 야곱입니다. 물을 마시는 자가 동쪽에서 왔든 서쪽에서 왔든 남쪽과 북쪽에서 왔든 간에 이 유명한 ‘야곱의 우물’이라는 내력을 지닌 채 물을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유대인이신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함께 이 우물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혈통의 장벽을 넘어선 만남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세계적인 글로벌 우물인 것입니다. 

세 번째 야곱의 우물은 교회입니다. 물만 퍼 주던 야곱의 우물에 예수님이 오셨고 사마리아 여인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물에서 예배로 발전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야곱의 우물에서 생명의 우물이요 예수님으로 발전합니다. 세 살적 우물에 빠진 트라우마에서 예수님은 만나 주셨고, 주의 종으로 세우시고 하나님 우물에 우물지기로 만드셨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왔다가 친구가 되고 친구에서 성도가 되며 전도자가 되고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는 곳, 그곳이 야곱의 우물, 아니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