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또 다른 이름 ‘괜찮아’

우리는 배신하고 믿음이 식어가지만 주님은 우리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2024-08-14     하도균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전도학)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받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잘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감격보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섭섭한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이 닫히는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 갑니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굳어져 가는 마음은 하나님께 반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아시는 주님은 굳어져 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정죄하시고 야단치시기보다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용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바로 우리를 격려하시고, 우리 편에서 우리를 이해해 주시는 하나님의 터치가 그 방법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잘못했어도,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용납하실 수 있다고 말해주어도,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죄지은 죄인이 하나님께 또 다른 횡포를 부리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심이 목적이시기에 마지막 날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굳어져 가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이해하시며 터치하실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우리의 눈높이에서 우리를 이해하시며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한없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때로는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방법으로, 죄를 지적하기보다는 그 사람 편에서 그 사람을 이해해 줄 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힘을 내어 뉘우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가수 이하이씨가 부른 노래 ‘한숨’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핵심 구절은, “가끔은 실수해도 돼, 너를 이해해, 수고했어, 내가 안아 줄게…”라는 부분입니다. 이 노래는 특별히 코로나 시기에 많이 불려져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독교가 힘들고 아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향하여 이러한 방식으로 다가서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방식이 이와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던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의 방식이 바로 이와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은 실제로 그 자리가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제자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 그리고 사역을 펼치며 살아가야 할 자리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소망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전초기지와 같은 예루살렘을 떠나 실의에 찬 채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의에 차서 세속의 도시로 내려가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하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다시 그들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십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부활의 경험이 아닐까요? 자신들의 삶을 올인하였던 일에서 실패를 맛보고, 소망 없이 세상으로 내려가고 있는 자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소망을 주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을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라는 문장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굉장히 따뜻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누가 들어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어구가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왜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냐고 야단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내가 부활한다고 말해주었던 것을 믿지 못하고 세상으로 내려가고 있느냐고 반문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누구나 의심할 수 있어! 확신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흔들릴 수 있어! 신앙이 성숙하기까지는!’ ‘누구나 쓰러질 수 있어! 세상이 만만찮으니!’ ‘넘어지면서 성장해 가는 거야! 그때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신앙의 흔들림과 넘어짐의 순간을 실패라고 정의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다시 일어날 때이고 회복할 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날 때입니다. 흔들림 없이, 넘어짐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을 배신하고 믿음이 식어진 것은 우리지만,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용서를 바탕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용서의 또 다른 이름을 ‘괜찮아’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그러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