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하나님을 읽기 ①
지난 회까지 성경적 설교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본문에 질문을 던지고 본문으로부터 들으라고 이야기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을 가지고 본문을 읽는 것은 매우 기초적인 수준의 본문 읽기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의 읽기만 일정기간 훈련해도 본문을 읽는 눈이 달라지고 설교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본문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본문 속의 장면을 재구성하고 빠져들 수 있다면 더 풍성한 설교를 위한 보석들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좋아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성경적 설교를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성경적 설교는 성경의 내용을 파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핵심인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적 설교의 목적은 단지 성경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교훈을 얻는 것을 넘어 설교자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청중들을 자신이 만난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그들도 자신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목적인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이며, 설교는 성경 속에 계시된 하나님께서 설교자의 순종을 통해 새롭게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적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본문으로부터 하나님을 읽고 토마스 롱이 말한 ‘거칠고 길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해야 한다.
마치 공룡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하고 몇 천만년 전 얼마나 큰 공룡이 그 지역을 걸었는지 분석하는 것처럼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 추론하는 정도의 본문 해석은 충분하지 않다. 검치 호랑이의 시신을 검시대 위에 올려 놓고 해부하며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를 분석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검시대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께서 성경 시대라는 멀고 먼 옛날에는 참 대단한 일들을 하셨다며 그가 마치 지금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성경을 읽어서는 안된다. 설교는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존은 본문으로부터 경험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본문으로부터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 초월자의 신비를 읽으며 경험해야 한다. 그러한 경험이 없는 설교는 생명이 없는 밋밋한 논설에 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