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편인 웨슬리, 돈없는 환자 위한 처방전 모음집도
성결운동에서 강조됐던 신유··· 의학과 신학은 어떻게 만나야 하나 영국 목사들은 역사적으로 교인들의 질병 돌보기도 해 특히 정신질환자 치료 잘해 부흥운동 활발했던 지역에선 웨슬리 권유로 약 비치해놓고 저서 ‘원초적 의술’ 23쇄 발행
성경은 신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는 신유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유를 부정하는 인식도 팽배하다. 신유는 성결운동 전통에서 강조되었다. 성결교회 주일 및 웨슬리 회심 기념일을 맞아 존 웨슬리의 신학과 목회 중에서 신유에 관한 부분을 살펴본다. 이 글은 의학과 신학이 어떻게 만나야 할지에 대한 답을 웨슬리에게서 찾으려고 한 보고서이다.
18세기 영국에서 교회개혁과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존 웨슬리가 마주했던 정신질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한편으로는 그가 의학에 대한 불신을 지니지 않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으로 모든 것을 대치하려는 환원론이 아니라 의학과 신앙의 영역이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사역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의학과 신학이 그리고 병원과 교회가 함께 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웨슬리의 신유사역을 살피면, 그의 신유활동이 당시의 사회적 약자(가난한 사람들과 여성)에게 더 수용적이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사역으로 치료가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밝히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웨슬리가 활동하던 18세기 유럽은 정신병원이 크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영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목사들 가운데 자신의 목회와 함께 교인들의 질병을 돌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특별히 국가종교라는 구조에서, 때로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때로는 경제적인 필요에서, 목회와 함께 (또는 목회직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의술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7세기 말을 지나면서, 이러한 목사-의사들 중 특별히 정신병자들을 개인적으로 돌보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 현상은 1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잉글랜드 국교회 소속 목사들뿐만 아니라, 특별히 비국교도 목사들 가운데서 정신병자들을 돌보는 일이 증가하였다. 목사들이 정신병자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는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일뿐만 아니라, 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주요 정신질환을 돌보던 의사가 목사였던 것은 결국 정신질환에 대한 초자연적 설명은 발달했지만, 그에 비해 아직까지 정신질환에 대한 만족할 만한 치료를 제공하는 정통의학기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목회자들의 의술 행위는 교구의 성도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것이 목사의 임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촉발되었고, 특별히 전문 의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지방에서는 목사들이 다양한 형태의 의술 행위를 제공하였다.
특히 목사들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개선된 돌봄을 포함하는 사회적 변화에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병원, 보호시설, 진료소를 위한 기금을 모을 때 그 동기를 부여하는 설교를 하였다. 또한 목사들은 보호시설(asylum)의 경영을 위한 후원자나 이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정신병원에 대한 조사관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공공 보호시설의 위원회에 참여하여 정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18세기 정신질환 치료에서 기독교의 주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는 도덕적 치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 있다. 믿음이 치료에 영향을 준다는 전통적 이해가 확대되어,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관리를 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종교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목사들은 이렇게 마음이 불안정한 교인들을 돕고자 하였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 체험과 1739년 페터레인 체험 이후 존 웨슬리는 부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자신의 메소디스트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1740년 8월 23일 베들람 병원에 입원한 한 여인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 병원에서 환자들을 취급하는 방식을 고발하였다: “그녀는 병원에서 다시 쇠고랑이 채워졌고, 다시 병원에서 통상적 방식으로 취급받았다. 이것이 남자들의 정의이다! 가난한 노상강도는 처형되고, 부인을 병원에 보낸 G씨 같은 자는 굉장히 정직한 남자로 존경받는다!”( 존 웨슬리 저널 1:420) 웨슬리는 특히 가난한 이들과 여성들이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다행히 그 다음 날 G부인은 교인의 심방을 통해, 병세가 크게 호전되었다.
웨슬리는 자신의 경험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이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이것은 영적인 문제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믿음을 가질 것을 권면하며,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웨슬리는 분명히 정신적 문제를 영적인 문제로 받아들여 해결하려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1739년 10월 12일에도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이것이 마귀에 의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성경 말씀을 읽어주고 기도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1739년 10월 23일에는 스스로 마귀가 들렸다고 비명을 지르기에 여러 사람이 붙잡고 있었던 여인을 웨슬리 형제가 만났으며, 그들의 찬송과 기도를 통해 그녀가 평안을 얻게 되었음을 기록했다.
주목할 것은 그가 만난 정신질환자들은 대개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와 찬송을 하였으며, 웨슬리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이와 함께 자신의 메소디스트 운동이 신약성경의 모습처럼, 곳곳에서 영적인 방해세력을 만났지만, 이를 초자연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1740년대에 들어서면서, 웨슬리는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하여 보다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당시의 의학적 설명을 읽고, 정신질환의 자연적인 원인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웨슬리는 자신의 저널에서 정신질환을 구별하여 설명하면서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을 이용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 한 예로, 1742년 9월 24일 광기를 겪고 있는 Gr_양을 만났고, 그녀가 단순한 정신질환자임을 인정했다. 또한 1743년 1월 13일에 여러 주간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울부짖는 중년 부인 K를 만났을 때도 자연적인 설명을 했다.
특히 자신보다 먼저 그녀를 만난 한 목사가, “이것은 의심 없이 악마다! 이것은 악마다”라고 판단하였을 때, 그 목사에 대해서 웨슬리는 이성적인 식견이 없는 목회자라고 비판했다. 그 목사가 올바로 판단했더라면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후에 그녀를 만난 웨슬리는 함께 모인 이들의 뜨거운 찬송과 간절한 기도로 그녀가 정신질환에서 회복되었음을 보고했다.
웨슬리는 1745년 8월 브리스톨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처방전 모음”을 출판하였으며, 이 처방전에 따라,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런던, 브리스톨, 뉴캐슬 환자들에게 나누어 줄 약을 비치하도록 하였다. 특히 1747년 의학지식을 종합한 처방전인 『원초적 의술』을 출판하였고, 이에 따라 지방을 돌아다니는 설교자들이 기초적인 의술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원초적 의술 은 그가 죽기까지(1791년) 23쇄가 발행되었으며, 모두 4만권 이상이 판매되었다. 결국 이 책은 웨슬리가 자신의 저술 가운데 가장 많이 교정하고 증보한 저작이 되었다.
원초적 의술 “서언”(preface)에서, 웨슬리는 질병과 죽음의 원인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신학의 입장을 피력한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마주하면서, 웨슬리는 신학에서 그리고 의학에서, 치료술들이 경험과 실험을 통하여 발전하여 수립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원초적 의술』의 “서언” 마지막 부분에 건강 유지법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신선한 공기, 소화력에 맞는 가벼운 식사, 충분한 수면, 적당한 운동 등을 열거하였다. 특히 정신질환과 관계가 있는 “울화”(passions)에 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1) 울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2) 격렬하고도 갑작스런 울화는 급성병을 자주 일으키거나 실제적으로 사람들을 급성병으로 몰고 간다. 3) 지속적인 재난이나 희망 없는 사랑 같은 울화는 만성병을 일으킨다. 4) 병을 야기한 울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의약은 아무런 효험을 거둘 수 없다. 5) 모든 불행에 대한 특효약인 하나님의 사랑은 그러므로 특별히 울화 자체를 적당한 한계 속에 둠으로써, 울화가 야기하는 모든 신체적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온전한 평온, 평정, 평안은 인간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결국, 웨슬리는 정신질환에 대하여, 당시의 의학적인 수단과 병원을 이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갖는 목회자로서, 의학적 수단을 사용하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웨슬리는 질병에 대한 실제적이고 통전적인 치료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사람의 마음에 이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온전한 평온, 평정, 평안은 인간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며, 그가 평생 추구해온 성결이야말로 전인적인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암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