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시론1408) 종교개혁의 완성자는 웨슬리
루터의 ‘죄 용서’와 칼빈의 ‘거듭남’을 거쳐 웨슬리가 강조한 ‘성결’까지 합쳐져야 개신교 신학 핵심인 구원론 완성되는 것
루터에서 시작하고 칼빈에서 발전한 개신교회의 신학(구원론)은 웨슬리에서 완성되었다. 이는 나의 말이 아니라, 1559년 칼빈이 세운 제네바 대학교의 역사신학 교수인 올리버 파티오(Oliver Fatio)가 한 말이다. 그는 칼빈의 기독교 개혁 4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책에서 개신교회의 개혁은 후스, 쯔윙글리, 루터, 킬빈 등을 거쳐서 존 웨슬리에게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왜 웨슬리가 기독교(종교) 개혁의 완성자인가를 살펴보자.
루터의 강조점: 구원의 방법, 칭의
루터의 기독교(종교)개혁의 발단과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는데 즉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구원의 방법에 관한 질문이었다. 루터가 자신의 문제에 해답을 발견한 곳은 성서였다. 그가 발견한 세 가지 원리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요 선물이라는 점에서 ‘은총만으로’, 인간적인 모든 업적(선행)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신앙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구원의 길(방법)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성서만으로’ 가능하다는 원리이다. 이는 구원의 방법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루터는 구원론에서 칭의(Justification, 義認)를 강조한다. 이는 죄의 용서이다. 칭의된 자는 죄의 용서를 받으며, 죄의 값(죄책)인 사망에서 놓여나 생명으로 옮겨진다. 다만 칭의는 법적인 신분의 변화를 가져올 뿐이지 도덕적, 영적 변화까지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생에서 이루어진다.
칼빈의 강조점: 구원자 하나님. 중생
루터의 신학이 구원의 방법이 주제라면, 칼빈신학의 주제는 구원자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의 구원의 방법을 이용하여 ‘누가 나를 구원하느냐?’라는 것이 그 다음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구원자 하나님’이 칼빈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구원자 하나님 중심의 신학’은 자연스레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론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내가 예정되었음을 어떻게 아느냐?’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 중생이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는 중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에서 구원론의 첫 단계가 바로 중생이다. 회개와 신앙과 칭의는 그 다음 단계가 된다. 이와같이 구원론에서 중생을 강조한 신학자는 칼빈이다.
웨슬리의 강조점: 구원의 대상인 인간, 성결
루터의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그리고 칼빈의 ‘누가 구원하는가?’라는 질문 다음 질문은 ‘누가 구원받습니까?’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웨슬리의 신학이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따라서 구원의 대상인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것이 웨슬리신학의 중심주제가 된다.
웨슬리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지만, 그러나 현재 인간은 하나님의 선행적(先行的) 은총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할 수 있다. 은총에 호의적으로 응답한 인간은 칭의되고, 중생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 즉 양자가 되는데, 이 단계를 성화의 시작 즉 초기의 성화라고 하며, 점진적인 성장 과정을 거쳐 완전성화 또는 성결에 이른다.
그러므로 루터의 ‘구원의 방법’에 따라서, 칼빈의 ‘구원자 하나님’이, 웨슬리의 ‘구원의 대상인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은 기독교 구원론의 기본 구조이며 핵심이다. 이 셋이 정립될 때 개신교회의 신학이 온전히 정립될 수 있다. 구원의 내용(과정)은 루터가 강조한 죄용서 받고(칭의), 칼빈이 강조한 거듭나고(중생), 그 다음으로 웨슬리가 강조한 거룩한 자녀(성결)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셋이 모여야 구원론이 완성된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 우리 성결교회(인)는 개신교(종교)개혁의 완성자 웨슬리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