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을 달려온 당진교회

다음세대 키우고 지역사회 돌보고 “당차게 도약할 70년”  2015년 예배당 신축으로 성장 발판 ‘새싹쑥쑥 유치부’ ‘BIG 유초등부’ 등  부서 이름짓기도 교회학교에 맡겨  교육 인프라-콘텐츠 지역내 부러움

2024-05-29     김준수

1954년 5월 21일 전도대장 최창도, 부대장 김병채 전도사와 대원 3명으로 구성된 십자군 전도대가 충남 당진에 도착해 5일장이 열리던 장마당에서 전도집회를 열었다. ‘성결교회의 중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최창도 전도사는 우렁찬 목소리로 담대하게 성결의 복음을 전하며 당진 읍내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때 성령의 감동으로 구원의 확신을 고백한 조원택 이기표 이영제 김순업 허선애 박윤옥 지정순 등 7인이 중심이 되어 사흘 후인 5월 23일 천막을 치고 감격스러운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당진교회(우경식 목사)의 70년 믿음의 항해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설립예배에 함께한 60여 명의 어린이들은 교회의 초석이 됐고, 6.25전쟁 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다수의 피란민들도 합류해 교회의 기틀을 닦았다. 이기표 조원택 김영제 김순업 허선애 씨는 집사로 임명을 받고 이제 막 설립한 당진교회 일꾼으로 헌신했다.

성령·사랑 중심 목회와 전도 열정으로 성장
당진교회는 교회의 기초를 확립한 초대 교역자 김현명 전도사와 2대 이원근 목사, 이후 3대 담임으로 유관빈 목사가 부임해 첫 번째 예배당 건축과 첫 학생회 조직 등의 사역과 영성 중심의 목회를 펼쳤다. 1967년 6월 5일에는 첫 임직식을 거행해 이완철 집사를 장로로 장립하고, 이보화 집사를 권사로 임명했다. 1963년에는 당진읍 우두리에 기도처를 세우고 1965년에 삼성교회로 개척했다. 유 목사는 총회 교육원장을 지낸 이병을 목사, 방인근 목사(수유리교회 원로), 한양수 목사(전 예성 총회장), 서창원 박사(전 감신대 대학원장) 등 인재를 다수 길러내기도 했다.

4대 담임교역자 정운기 목사는 사랑의 목회를 펼치며 교회의 아픔을 보듬으면서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 목사가 은사 중심에서 성경공부 중심으로 사경회 방식을 전환하면서 성도들과 견해 차이를 빚게 되자 중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1975년 7월 당진중앙교회로 분립해 나갔다. 1973년에는 당진읍 채운리에 세웠던 기도처가 채운교회로 개척됐다. 두 교회의 분립으로 한때 170명까지 출석했던 성도가 15명만 남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정 목사부터 손수 리어카를 끌고 성도들과 함께 벽돌을 나르며 1977년 새 예배당 건축에 나서 다시 한번 부흥의 계기를 마련했다. 1980년에 예배당 건축을 완료하고 이듬해인 1981년 6월 16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당진교회를 안정된 궤도로 이끌었던 정 목사는 목회 정년을 맞아 1991년 3월 13일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도 당진교회가 세 번째 예배당 건축에 나섰을 때 자신의 매장지를 기증하며 끝까지 교회를 섬겼다.

1991년 3월 20일 제정훈 목사를 5대 담임교역자로 청빙한 당진교회는 지역사회를 섬기며 전도에도 힘썼다.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역이 1993년 11월 21일 열린 ‘1000명 총동원주일’이다. 제 목사와 성도들은 “할 수 있다 1천명, 하면 된다 1천명”이라는 표어를 외치며 태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부모형제와 가까운 이웃, 친구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총동원전도주일 당일에는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대성황을 이뤘다.

정덕균 목사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6대 담임교역자로 시무했다. 정 목사는 교회 부흥의 필연적인 요청 사항이었던 교회 증축을 마무리하고 해외선교사 파송, 미자립교회 지원, 선교소식지 등을 발간하며 복음의 열매를 맺었다. 현재 당진교회가 위치한 당진시 원당동 원당리 854번지 1,200평 부지를 매입해 교회의 미래를 준비했다. 또 2002년 용연교회, 2004년 숲속의 하얀 정원교회, 2005년 광명교회(광명실버하우스)를 개척했다.

 

은혜의 70년 도약하는 70년
당진교회는 7대 담임교역자인 우경식 목사의 부임으로 확장과 성장을 넘어 성숙한 교회를 지향하며 당진시를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2014년 3월 23일 기공예배를 드린 이후 1년여 만에 완공한 신축 예배당이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4층 규모의 예배당은 다음세대를 위한 예배 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됐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도 개방되고 있다.

다음세대 사역은 우 목사가 추구하는 목회사역의 4가지 기둥 중 하나다. 인구절벽 위기에 처한 인구 17만명의 소도시인 당진 지역에서 교회학교를 살리기 위해 부서의 이름을 정하는 문제부터 각급 교회학교에 권한을 위임했다. 그 결과 △새싹쑥쑥 영아부 △하트뿅뿅 유치부 △BIG 유초등부 △ING 중고등부 △히엘 청년부 등의 기발한 명칭이 나왔다. 어린이를 위한 키즈랜드와 하늘공원도 교회의 자랑이다.

다음세대 사역을 비롯해 △17개 사역위원회 △소그룹 사역 △총남전도회와 총여전도회 등도 철저한 권한의 위임과 자발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배, 화해질서, 해외선교, 장학, 재정, 다음세대 교육, 찬양음악, 친교, 전도, 상조, 체육문화 홍보, 차량관리, 예배당 미화, 봉사, 시설 관리 등의 15개 위원회와 교회70년사 발간특별위원회, 다음세대 찬양 및 부흥특별위원회 등 2개의 특별위원회에게 해당 사역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다. 교회 정관의 시행세칙에도 “위원장에게 해당 업무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되, 담임목사와 협의 후 집행한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당진교회는 공동체로서 교회의 원형인 소그룹 사역에도 집중하고 있다. 공동체(교구), 다락방(지역), 셀(구역)을 두어 서로 격려하며 돌아보게 하고, 공동체마다 지도 교역자, 공동체 장로, 총무, 회계, 서기로 운영위원을 구성해 자체적인 사역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추게 했다.

전도와 함께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총남전도회와 총여전도회 사역도 오늘의 당진교회를 있게 한 든든한 기둥이다. 총남전도회는 1~5남전도회, 총여전도회는 1~8여전도회로 구성됐다. 이들은 팬데믹 당시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들을 돌보던 보건소 직원들을 위한 간식을 제공하거나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삼계탕 나눔’도 진행하고 토요일마다 지역사회를 위한 방역활동도 펼쳤다. 현재 당진교회는 청장년 805명을 비롯해 영아부 22명, 유치부 30명, 유초등부 75명, 중고등부 63명, 청년부 35명 등 재적 1,050명의 교회로 성장했다. 지역에서도 당진교회보다 역사가 오래되거나 규모가 큰 교회는 있어도 당진교회만큼 다음세대를 위한 인프라와 콘텐츠를 갖춘 교회를 찾기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경식 목사는 “다음세대 믿음과 실력을 향상하고 선교 영성 함양을 위해 1월에 한 달간 필리핀 팔라완(배문성 선교사)에서 영어선교 캠프를 했다. 10월 26일로 예정된 당진시 전체 교회가 참여하는 청소년 찬양축제 준비와 개최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인구 17만명의 소도시인 당진에서의 다음세대 사역도 만만치 않지만, 교사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출석이 늘어나고 있다. 교회 차원에서도 앞으로 달려갈 70년을 생각하며 다음세대 사역에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