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400)장애인에게 장애 없는 교회
2,644,700명! 2021년 5월 보건복지부에 등록 장애인 수이다. 이는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등록되지 않은 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 쓰는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 시선의 사람들은 “장애인들은 외출하지 말아야지. 사람들에게 방해만 될 뿐”이라며 폐부를 찌른다. 그들의 마음속에 비수를 꽂는다.
교단이 장애인 주일을 지키는 것은 의식 있는 매우 기쁜 일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동안 많은 장애인을 고쳐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친히 찾아가서 만나주셨다.
C국가에서 시민의식을 시험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설문을 했다. 시민들에게 ‘시각 장애인이 도움을 청한다면 선뜻 돕겠는가?’라는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놀랍게도 92%가 ‘고민하지 않고 도움을 줄 것’이라 답했다. 이는 단순하게 도움을 줄 의향을 넘어 한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
서울의 T복지관은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1명이 포함된 공동체의 야외 나들이를 계획하였다. 그런데 이동 수단, 화장실, 식당 등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했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 도로까지 세심히 살펴야 했다. K문화, K드라마, K팝 등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편의시설은 장애인에게 모두 불편한 시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준비 기간만 2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지금 교회는 어떠한가? 최첨단 시설과 인적 재정적 넉넉함이 사회가 부러워할 정도인 한국교회는 진출입로 계단 하나 둘이 거대한 성벽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교회는 최소한 장애 유형 및 장애인과 함께 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예절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장애 유형은 크게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가 있다. 보편적인 장애 유형은 15가지로, 대표적으로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이다.
교회가 장애인을 가까이하고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예의를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서로 공감을 갖기 위해서이다.
공감은 장애인과 함께하기 위해 접근성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를 하고, 도움을 주고자 할 때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올바른 언어 사용은 마음의 공감을 나누는 지름길이다.
장애와 관련하여 ‘정상인’은 비하 용어며 ‘비장애인’이 바른 용어이다. ‘장애우’도 삼가야 할 용어이며 장애인이라 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지적장애인, 지체장애인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한 구전되어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귀머거리 삼년’과 ‘벙어리 삼년’은 ‘인내의 시간을 갖고’라는 대체 표현으로 장애 관련 관용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예의를 잘 지키면 배려이지만 지키지 않으면 큰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상처는 그 공동체를 떠나게 한다.
예수 공동체인 교회는 장애인에게 복음이 되고 도전과 용기가 되고, 비장애인에게 함께함과 사귐과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장애와 비장애인의 장벽과 차별과 억압과 무관심을 넘어서 모두 함께 생명과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비전이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
끝으로 겉보기에 밝고 건강해 보이지만 청심환을 먹고 회의를 하며 졸피뎀으로 밤을 버티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릴 충동을 느끼며 탈출구를 찾는 현대인들이 많다.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을 비장애인이라 할 수 있을까….
가슴이 아파 온다.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 또 약함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약함이 선물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삶을 나누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