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상권 살린 ‘중림동 바리스타’ 주재현 집사(아현교회)

149번지의 기적··· 으슥한 골목이 커피향에 북적 53년이나 된  아파트 1층 상가에 2015년 카페 연다니 모두 말려 개업하자 신기하게도 ‘문전성시’ 하루 500명 몰리고 직원도 3명 덩달아  문닫은 점포들도 부활 “상점들  뭉치는 마을기업이 꿈”

2023-10-11     홍지혜

서울 중구 중림동 149번지 좁은 골목길에 커피 향이 가득하다.

매일 아침 원두 볶는 향기로 이 길을 채우는 건 이름만 들어도 고소한 ‘커피방앗간’, 주재현 집사(아현교회·사진)가 운영하는 카페다.

1970년에 지어진 국내 최초 주상복합성요셉 아파트를 접한 100m 남짓한 이 골목에는 주 집사의 ‘커피방앗간’을 비롯해 꽃집, 온라인 문구점, 네일샵, 미용실, 40년 된 계란 집, 두붓집, 떡집, 식당, 기름 방앗간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가 밀집해 성업 중이다.

 

주 집사의 '커피방앗간'.은 50년 넘은 아파트 앞 골목에 위치한다. 사진은 이 골목에서 열린 장미축제 때 카페 앞 원두를 판매하는 모습.

훈훈한 인심에 거리 분위기도 좋다. 서로 얼굴과 사정을 잘 알고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다. 주기적으로 마을 상인들끼리 사업을 돕기 위한 모임도 열린다. 걷기 좋은 보도블록과 말끔한 건물로 젊은 사장과 손님들이 활발히 오간다.

그러나 이 골목은 불과 7~8년 전만 해도 인적이 드물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장사 하던 10여 곳 가게 중 3분의 2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오래된 아스팔트길 곳곳이 움푹 파여 걸어 다니기도 불편했다. 골목 한쪽을 전부 차지한 폐창고는 길고양이 소굴이었다. 돌보는 이가 없어 냄새가 진동했다. 주 집사는 이 거리에 홀로 카페를 열었다.

 

주재현 집사는 인적 드문 골목에 당차게 카페를 열면서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이 길을 살렸다고 고백한다.

당시에는 흔치 않던 원두 로스팅 전문 카페였기 때문에 손님들이 직접 찾아오기 어려운 골목이라도 로스팅한 원두를 납품하러 다니기엔 괜찮은 위치라고 판단했다. 그는 “창업 고민 중 위치와 임대료를 고려해 여기로 결정했다”라고 아무도 없던 골목에 카페 문을 연 이유를 설명했다. 

인적 드문 거리는 한산했다. 주 집사가 상권 조사차 하루 종일 길에 머문 날 총 6명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래도 그곳에 오픈을 감행했다.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카페를 여냐고 묻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의아해할 정도였으니, 이 자리는 탁월한 안목으로 고른 자리가 절대 아니다. 카페를 열기 위해 3년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혼자 로스팅해서 영업하는 건 처음인지라 실력도 변변찮았다”면서 이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기다리던 중 이 자리를 주셨을 때 아내도 나도 확신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개점 준비 중 둘째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불안감과 경제적 압박도 심했다. 모든 상황이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뚝심있게 개업을 했다. 안 될 것 같은 자리에 카페를 여니 안쓰러웠던지 바로 옆 떡집에서 매일 떡을 가져다줬고, 점차 카페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

 

중림동 149번지에 위치한 주재현 집사의 '커피방앗간' 전경

2015년 8월, 그렇게 이 골목 첫 카페가 문을 열었다. ‘커피방앗간’이 문을 열자마자 주변 직장인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작 6명 지나다니던 거리의 41.25㎡(12.5평)짜리 카페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관이 펼쳐졌다. 카페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골목으로 알려지면서 ‘KBS 다큐 3일 성요셉 아파트 72시간’ 편에 카페가 전파를 탔다. 당시 주 집사는 “어떻게 알고들 오시는지 저도 신기합니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다. 이후 손님이 더 늘어 하루에 500여 명씩 카페에 찾아왔다. 직원도 3명을 뽑았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 했지만, 주 집사는 “골목 전체가 살아나는 일은 저의 힘으로 할 수 있던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내 능력으로 되는 일이 아님이 분명했기에 주변에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섰다”라고 말했다. 받은 복을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는 잘나가는 카페 사장이 되었지만 ‘내 가게 확장’에만 주력하기 보다 이웃에 눈을 돌렸다. 주민센터 내 카페 오픈을 도왔고, 동네 사람들에게 커피 교육 프로그램을 열어주었다. 서울시 도시재생센터가 이 골목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가 외관 교체 작업이 이뤄졌고, 비가 많이 오면 건물이 새던 것도 고쳐주었다. ‘걷기 좋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 보도블록도 새롭게 깔렸다. 

 

말끔하게 단장한 149번지 골목. '커피방앗간'이 골목에 들어온 후 인파가 몰리면서 유명한 골목이 됐다. 폐창고로 골칫거리던 길 한쪽은 서울시의 도시재생센터 주도로 재건축 되었고, 보도블록도 새롭게 깔렸다.

서울시는 또 골칫거리였던 중림창고를 전면 재건축해 창고 느낌의 주민 소통 공간으로 재생했다. 현재 서점, 구청 연계 배움터 등으로 활용하며, 주 집사도 이곳에서 종종 커피 교육을 한다.

서울시가 지원하고, 상인들은 거리를 잘 유지하기로 상인 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관계가 좋았던 주 집사는 상인회 총무를 거쳐 ‘149번지 상인회’ 대표를 맡게 됐다.

 

149번지 상인회 주관으로 진행한 장미축제에서 주민들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주 집사는 매년 골목에 장미가 활짝 피는 주말을 이용해 상인회 주관 장미축제를 열었다. 올해로 2년째 연 축제에 각 상점 주인들은 팔 수 있는 물건을 가져와 팔고, 특별히 어린이 셀러도 모집했다. 원데이 커피 클래스, 페이스 페인팅 등 차 없는 거리 축제로 지역 아기 엄마들의 호응이 좋았다. 도매 전문 떡집 주인을 도와 패키징을 바꾼 다음 소매 판매를 시도했는데, 이날 축제에서 처음으로 완판을 경험했다.

주재현 집사는 “가게 한 곳만 잘되는 게 아니라 모두 같이 잘되기 위해 다양하게 판로를 개발하고 돕는다”라며 축제의 취지와 상인회의 비전을 함께 밝혔다. “지금 진행하는 각 상점 로고 디자인과 패키징 개발 등에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하나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149번지 상가들이 시너지를 내는 ‘마을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다”라는 주 집사. 

자신은 한 게 없이 저절로 잘 돼서 할 말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주 집사의 발걸음이 오늘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