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1349호) 종교를 새삼 생각한다

2023-02-07     김진복 장로 (수필가 · 대광교회 원로)

종교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복 받기를 바라면서 한정된 삶을 사는 인생은 믿음의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많은 종교를 보면서 토테미즘을 시작으로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체계로 발전한 것이 종교조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체제는 계속 발전·생성한다. 과학과 종교를 별개로 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신학도 학문이란 측면에서 과학으로 접근 가능하다. 그러나 종교의 깊은 경지에서는 신학은 독자적인 위치에 있다. 과학으로 접근 불가능한 부분으로 신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한 1서 4장 12절에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이 미칠 수 없는 한계를 말해 주고 있다.

세상과 사회의 모든 체제는 인간들이 꾸준히 가치를 찾고 다듬어 간다. 종교도 그렇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하여 불안감을 없애고 정신적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는 이런 틈새를 찾으려 사력을 다하고 특히 사람을 미혹하는 기술이 출중하다. 그런 유혹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원래 종교는 정치의 수단으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권력자가 종교의 이념을 정치화하여 그 목적하는 가치를 역이용하고 종교조직의 권한이 방대해지면서 정치를 뛰어넘는 권력 수단으로 변형되었다. 현대종교는 순수한 종교 가치를 표방하면서도 그 속에는 종교 지도자의 개인적 이념과 욕구가 중첩되어 조직의 확대를 위해 경제적·금전적 추구를 중시하는 경우를 보이기도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오랫동안 쌓여 온 일탈된 종교적 바벨탑을 깨뜨리는데서 출발했다.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는 보통 사람과 다른 독특한 인간형이 있다. 종교를 앞세워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거짓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종교에 정치를 이식하는 정치형 지도자도 있다. 

어느 가톨릭 신부가 지나치게 현실 정치에 편향되어 굿판을 벌인 사실을 보면서 종교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게 한다. 해외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바라는 저주의 기도를 했다. 그가 한 짓을 보면서 가끔 영화에서 신부 옷을 입은 거짓 성직자가 악령의 종이 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마귀의 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신부는 면직이 아닌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사이비 신부를 파면하지 않는 것에 의아심을 가진다. 모르긴 하지만 세간에서 잊혀지면 악령의 신부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항간에는 손가락질 받는 스님과 목사도 있지만 그 같이 노골적으로 남을 죽이기 위해 저주를 퍼붓는 성직자는 없었다. 이 밝은 대명천지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사회조직체제에서 종교는 문화적 조직으로 분류된다. 문화는 사람의 생각, 가치, 행동 등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종교문화다. 세상이 많이 변한다고 해서 종교가 그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 우리 성결교는 어떤지 그 실상을 모르는 교인들도 다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느 종교, 기독교 단체들보다 성결교는 종교적 뿌리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중복음인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 딱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신앙으로 그대로 살 것인지 우리 모두 되돌아보자.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분명히 살아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