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산책<14>

여성 사역자! 그대의 자리는…

2012-07-04     허명섭 박사(시흥제일교회)

도르가(Dorcas)라는 전도부인은 “한 해 동안 369권의 복음서를 팔았고 2540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나라는 전도부인도 “한 해에 426개의 복음서를 팔았으며, 3000명의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곽씨 성을 가진 전도부인은 1년 동안 “297명을 방문했으며, 병원에서 1652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국교회 초기에 전도부인들이 보여주었던 활약상의 일부로, 그녀들이 한국의 여성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가히 짐작케 해 준다. 초기 한국교회의 사료(史料)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여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할 정도이다. 전도부인이면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처럼 오해되기 상이다.

전도부인은 한국여성들의 각성과 변화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와 관련해 프레이(L. E. Frey) 선교사는 이렇게 적었다. “전도부인은 한국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여성들은 전도부인들을 매우 환영한다. 전도부인들은 그녀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사회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으며, 살아가면서도 거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야 했다. 그들은 거의 노예나 다름없이 일했으며, 배울 수도 없었고 마치 읽을 능력조차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여성들이 생각한다는 것은 꿈에서 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전해진 기독교의 복음은 그야말로 해방의 빛이었다. 기독교 복음은 그들에게 삶의 이유와 의미, 그리고 가치를 찾아 주었다. 이름이 없던 그들에게 이름을 찾아주어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배움과 실천의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자아실현의 길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전도부인의 이야기들이 많은 지면을 장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자신의 권리와 주위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참된 변화의 언저리에는 늘 눈물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변화를 선도하는 그들 앞에도 거듭되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끼 밥은 굶는 법이 있어도 사람들의 모욕을 거르는 법은 없었다. 그럴 때면 그들은 때로 연약함에 떨기도 하지만 결국 견고한 믿음과 강인한 인내로서 그러한 고통을 극복해 나갔다. 한 전도부인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내 육신은 연약하여 부들부들 떨립니다. 이럴 때면 산꼭대기에서 무릎을 꿇고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으로 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네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고. ‘내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자를 들어서 힘센 자를 놀라게 하시나니’라고."

한국교회사에서 전도부인들은 예수님이 칭찬하셨던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영적 자존심과 복음에 대한 자랑이 분명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의 실정은 어떠한가? 후대에게 물려줄 이런 아름다운 유산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문으로 전해 듣는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예수 바보들의 눈물겨운 노래가 얼마나 될까? 그보다 탐욕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종교 천재들의 구호가 더 많은 것이 사실 아닌가? 사명이라는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 수많은 사역자들, 특히 여성사역자들, 그녀들의 정체성과 자리는 과연…. 주님의 보시기에 칭찬일까? 자원 낭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