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시론,1343호)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누가복음의 시론은 깔끔하고 분명하고 날카롭다 지극히 세속적인 세상의 흐름 한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말씀을 받은 요한은 곧 행동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때 그네들 사는 사회에 살아 움직였다
이 칼럼의 꼭지 제목이 기독 시론(時論)이다. ‘시론’은 그때그때 일어나는 시사에 대한 평론이나 의견을 말한다. 시의성이 있어야 하고 상황에 대한 관점이 분명해야 한다. ‘기독’ 시론이니 당연히 기독교적 관점으로 상황을 봐야 한다. 누가복음 3장 1~2절은 이런 점에서 탄복할 만한 기독 시론이다. 내용을 보자.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그 당시 세속 사회의 통치자들을 줄줄이 언급한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비롯하여 중요 직책을 맡은 자들이 사람 사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다.
디베료(티베리우스)는 주후 14~37년에 로마제국의 황제였다. 이어서 언급되는 분봉왕들은 헤롯대왕의 자식들이다. 대제사장 안나스는 로마인들에 의해서 주후 15년에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의 사위 가야바가 주후 18~37년에 대제사장으로 있으면서 안나스는 계속해서 영향력을 가졌다. 시대와 문화권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그렇듯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세상사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를 뚫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이 본문에서 통치자들 명단만이 시의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에도 시의성이 명백하다. 누가가 말하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시론을 오늘날의 상황으로 번역해 보자.
세계적인 전염병 코로나19를 인류가 꼬박 3년을 겪고 있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경제 논리 일변도의 미국 이기주의로 대중에 영합한 트럼프를 꺾고 바이든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시진핑이 중국의 ‘시황제’로, 소련 부활의 망상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아베 전 총리가 주장한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짝 다가서는 기시다가 일본의 총리로,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서울시장으로 재기한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4년 전 지방선거의 판세가 국민의힘으로 확 바뀐 상황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정원오가 성동구청장으로, 세계 최대의 교회 담임목사 이영훈이 한국교회총연합의 대표회장으로,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김주헌 목사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총회장으로 있을 때에 ….
누가복음의 기독 시론을 우리 시대로 번역하면서 하나님의 개입은 말없음표로 처리했다. 여기에 들어갈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질문들에 연관돼 있다. 이런 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떤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이 걸린 하나님 말씀과 관련된 상황은 어떤가?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또 어떤 교회에 임하는가? 말씀이 임한 그 사람과 교회가 행동하는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인류에게 주신 유일하고 완결된 계시의 말씀인 66권 성경은 이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이며 말씀이 삶이 되게 하는 능력인 성령님은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가? 교회는 지금 여기 역사의 한가운데서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누가복음의 시론은 깔끔하고 분명하고 날카롭다. 지극히 세속적인 세상의 흐름 한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말씀을 받은 요한은 곧 행동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때 그네들 사는 사회에 살아 움직였다. 21세기의 오분의 일을 넘긴 이때 진정한 의미의 기독 시론을 온 삶으로 써야 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