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시론, 1313호) 균형과 신뢰

2022-04-13     권세광 목사(대사교회)

균형은 개인과 사회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균형의 전제는 극단, 그것도 양극단 사이의 중심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흑백의 관점, 즉 모두 선하든지 아니면 모두 악하든지, 전적으로 옳든지 아니면 완전히 틀렸든지 하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으로도 쏠림이 없는 중심, 그렇다고 ‘중간 어디쯤’의 막연함이 아닌 기울어지지 않는 ‘바로 그 지점’이어야 할 것입니다.

신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리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갖기 때문입니다. 관계, 소통, 일 등 우리가 연관된 모든 활동에 영향을 끼치며 한 조직의 장래와 가치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기에 신뢰는 균형을 이루기 위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할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이 모인 집단과 공동체 조직, 나아가 국가와 교회에서까지 신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신뢰가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 속에는 구성원들이 느끼는 조직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자리합니다. 신뢰 수준이 조직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에 대한 신뢰 수준이 높을수록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균형은 일종의 신뢰를 가늠하는 지표가 됩니다. 따라서 균형과 신뢰, 개인과 조직이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자 요소입니다.

여기에는 구성원과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것도 일회적이 아닌 지속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집단과 공동체, 국가와 교회의 존재 가치를 더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뀐다는 것과 ‘정부’가 바뀐다는 것 중 어느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일까요? 사실 표현의 정확함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의 체감일 것입니다.

정부를 이끌어 가는 현 정권에 대한 평가나 다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그 권력을 받겠다는 인수위를 보며 정작 중요한 국민 체감인 균형과 신뢰가 저 멀리 뒷전으로 밀려나 있어 보이는 것은 단순한 착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작 사회 구성원이자 권력 주권자로서 국민이 존중과 배려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적 체감’ 때문입니다.

굳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날마다 벌어지는 ‘그들만의 잔치’를 보는 듯한 씁쓸함에 ‘새 소식 없는 뉴스’를 끄게 만듭니다. 실망과 기대할 것 없다는 냉소만을 머금은 채로 말입니다.

균형이 어긋나면 신뢰는 쌓아질 수 없습니다. 혹 쌓아진 신뢰가 있어도 균형이 무너지면 다 허물어지는 것이 자명할 것입니다.

지지한 이들만 바라볼 것 아니라, 지지하지 않은 이들을 세밀히 살펴볼 수는 없을까? 지지한 이들을 존중하되, 지지하지 않은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지혜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

바른 판단과 결정을 가능케 하는 것이 성숙함에서 오는 지혜라면 이제 우리 국가, 사회 공동체가 그만큼 자라 있으니 늘 국민을 입에 달고 계시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만이 옳은 세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기 안에, 자기 의에만 있을 뿐이지요. 누구의 말마따나 새는 날개 한쪽으로 나는 법을 모릅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굿 뉴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신앙과 믿음의 고백 안에 담은 교회는 여전히 세상을 향합니다.

동시에 세상이 교회를 두고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래도 나가보면 교회라고, 성도라고 우리에 대한 존중과 신뢰의 기대를 거두지 않고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균형을 잡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