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장로 가문/ 신태원 · 신창균 · 신현성 장로

“예수 믿으려면 신 장로처럼 믿어라” “부모님 삶 보며 믿음 배웠죠” 신앙인의 모범 가정

2021-11-17     황승영 기자

“예수 믿으려면 신태원 장로처럼 믿어라.” 이 말은 충무교회(성창용 목사) 신창균 원로장로(83세)의 부친, 고 신태원 장로가 살았던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일대 주민들의 찬사였다.

백암교회(이호균 목사)의 초기 발전을 이끈 신태원 장로는 일제 강점기부터 소작농과 인재를 아끼고 육성하는 농촌복지가로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의 모델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아버지의 신앙을 지켜본 신창균 장로는 아버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신앙의 지계석을 옮기지 않았다.

신앙의 첫 씨앗이 뿌려진 9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하나님을 우선하는 일에 힘썼다.

이런 불굴의 신앙으로 선대 신태원 장로, 2대 신창균 장로에 이어 3대 신현성 장로(안창교회 58세)로 기독교 가문의 명맥을 이었다.  

고 신태원 장로는 1930년경 제수 김수덕의 전도를 받아 신앙을 갖게 되었다. 1934년 4월 세례를 받았으며, 1938년 40세에 장로 장립을 받았다.

그는 백암교회의 창립과 확장을 견인했다. 농업에 종사하며 정미소를 경영했던 그는 교회당 건축을 위해 자신의 사랑채를 내주었고, 교회당을 증축할 때도 자신의 논을 매각하여 공사비용을 충당했다.

백암교회가 백암면 면소지로 이전하는데도 신 장로의 역할이 컸다. 그는 또 농협 전신 금융조합의 용인지역 책임자로, 면의회 의장으로 피선되어 그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했고, 용인지역에서 넓은 농토를 위임받아 소작인들에게 큰 혜택을 베풀어 존경을 받았다.

백암지역에서 중학교를 설립했으며,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지원 등 육영 사업으로 인재 양성에도 앞장을 섰다.

그가 세운 학교가 백암중고등학교 됐으며, 이 학교의 기성회장 겸 이사장도 역임했다.

이런 신 장로는 1969년 82세를 일기로 소천할 때까지 자녀들에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교훈했다.

신창균 장로는 “아버지는 머슴살이 하던 사람에게 집을 지을 땅을 내어주고 거지에게도 항상 상을 차려 풍족하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회상했다.

신창균 장로는 이런 아버지를 따라 2km 넘는 밤길을 걸어서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충무교회를 출석하게 됐다.  

신 장로도 아버지처럼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겼다. 충무교회가 서울강남에 교회당을 지을 때다.

당시 셋방살이를 하고 있던 그는 집 한 채 값인 100만 원을 건축헌금으로 약정했다.

집사이면서 건축위원회 총무를 맡아 여섯번 특별 헌금도 드렸다.

신 장로는 “교회당을 준공했을 때 자동차도 없는 제가 충무교회에서 가장 많이 헌금한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말했다.

신 장로는 이후에도 교회의 크고 작은 일에 아낌없이 헌신했다. 선교사들에게 선교비를 지원했고, 가난한 이웃을 돕고 살라는 선대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성도들을 돕는 일에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초록어린이재단과 굿네이버스 등 다섯 단체에 꾸준하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광장시장 상인들의 인권과 복지에도 그는 솔선수범했다.

광장상인회장을 맡으면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에어콘을 설치하는 일을 주도했다. 옆 동에 있는 상가에서 “신 사장님 우리 상가에도 에에컨을 놓아 달라”고 할 정도로 그는 주변 상인들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신 장로는 서울강남지방회 장로회장 성로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기성 평신도대학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신창균 장로의 장남, 신현성 장로 역시 조부와 부친의 신앙을 이어 농촌교회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축산과를 나온 그는 27년 전 강원도 원주로 귀농했다. 이곳에서 펜션과 농장을 운영하며 농촌교회를 섬기고 있는 신현성 장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다.

목회자를 도와 노인 성도들을 돌보는 일도 맡고 있다. 이들 부자는 자신들의 신앙 발원지인 경기도 용인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창균 장로는 “아버지 이름 ‘태원’을 넣어서 교회를 세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평생 기도해 왔다”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각해서 교회당을 세우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믿음을 상속 받은 신창균, 신현성 장로는 ‘예수 믿으려면 신 장로처럼 믿으라’라는 신앙 가풍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