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기 우수상/ “샘물교회라서 생수를 주나요?”

교회 할머니 가슴 찡한 목회 전도용 수레에 간식 싣고 다니며 어린이 · 청소년 영혼에 생수 전해

2021-07-14      손정혜 목사(전북샘물교회)

나는 올해 65세(1957년생) 여목사이다. 우리 교회는 남편과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다. 청소년사역을 감당하기에 많은 나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를 청소년사역자로 불리게 했다.

우리 교회 첫 신자는 2017년 봄에 온 초등학교 3학년 김나래(가명)다. 나래는 맞벌이 가정 아이라 부모님의 손길이 부족했다. 3학년인데 한글도 제대로 몰랐다. 한글을 모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혼자 겉돌다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나래에겐 관심과 돌봄이 필요했다. 나는 나래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나래가 올 시간이 되면 빵이나 김밥을 준비해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방학이면 갈 데가 없다고 해서 아침 8시부터 와서 종일 함께했다.

나래는 우리 교회를 집처럼, 나를 엄마처럼 대했다. 한글 가르치랴, 밥 챙겨주랴 가끔 성가시기도 했으나 나래가 있기에 우리 교회는 성도가 있는 교회였고, 나는 양이 있는 목자였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전주삼천남초등학교 일대는 30년 전 조성된 곳이다. 주택들이 깨끗하고 월세가 저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전형적인 서민 동네로 나래의 가정처럼 대부분 맞벌이를 하며 고되게 살아갔다. 나 또한 그들처럼 어려운 삶을 살았기에 그들의 형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여 급할 때 조금의 보탬이라도 되길 바라며 교회 앞에 탁자를 내놓고 보리건빵, 컵라면, 1.8L 쌀 병(1일 2개)을 올려놓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이웃이 많았는지 먹거리들은 30분이 못 되어 다 없어졌다. 한글 가르쳐주는 ‘교회 할머니’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방치되기 쉽다. 거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원조차 가지 못하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사고를 치기 일쑤다.

어느 겨울, 교회 앞에서 동네 여자아이들과 남자들이 싸움이 붙었다. 한 남자아이 손에서 피가 흘렀다.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가가 아이들을 말렸다. 그리고 피 흘리는 남자아이의 손을 닦아주고, 복음을 전하며 밴드를 붙여 주었다.

“어느 교회예요?” 남자아이가 물었다. “2층 샘물교회야.” 했더니 “이번 주부터 교회 갈게요. 그 교회 다니고 싶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남자아이는 정말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우리 교회 두 번째 신자다.

이 아이를 시작으로 동네 짱 4학년 최 율(가명)과 여자아이 5명이 예배에 오기 시작하였고, 그 친구들이 한 명 두 명씩 따라오기 시작해서 교회가 아이들로 북적였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들이 오면서부터 나래는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았다. 교회에 오기 시작한 아이들이 바로 나래를 왕따시킨 그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서 마음이 아팠다. 비록 나래는 교회에 오지 않았지만 나래는 우리 교회 첫 번째 성도였고, 나는 아직도 나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간식싣고 달리는 ‘전도 수레’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남녀 친구, 동생들과 함께 축구를 한다. 나도 축구화를 신고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한다.

1학년들은 나를 교회 할머니라 부르며 따른다. 축구가 끝나면 전도용 수레에 싣고 온 생수와 쭈쭈바, 컵라면을 나누어 준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시원한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는 “샘물교회라서 생수를 주나요?”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 맞아. 생수를 주는 샘물교회란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단다. 너에게 그분을 소개하고 싶구나.”

아이들에게 샘물교회는 생수를 주는 좋은 교회, 신뢰받는 교회가 되었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16명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전도용 수레 가득 컵라면, 컵 닭강정, 생수, 쭈쭈바 등을 싣고 중학교 옆 공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만난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마스크도 준비해 나누어 주고 있다.

전도용 수레는 장터에도 간다. 교회 1분 거리에 오후 3시만 되면 장이 열려서 채소 장사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여름에는 생수를 겨울에는 유자차를 나른다.

때로 교회에서 전기를 끌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컵라면, 코코아, 커피 등을 대접하기도 한다. 전도용 수레는 맛난 먹거리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어디든 간다. 성품 학교 우리 아이들은 사랑과 돌봄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성품 때문에 욱하는 일이 많고, 입까지 거칠어 다툼이 많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2018년 제1회 성품학교를 열었다. 매주 토요일, 4주간 진행된 프로그램에 10명이 수료했다. 4주의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거친 성품을 다 매만져 줄 수는 없었으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기쁨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성품학교는 여름성경캠프로 확장되었다. 익산삼광교회의 도움으로 좀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손정혜 목사

최근에는 복음의 깊이를 확장하는 ⌈보라⌋ 일대일 양육 교재로 2~3명씩 분리하여 3단계까지 진행하고 있다. 혼자서 많은 일을 하려니 힘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감사할 따름이다.

날마다 자라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불신자 가정이다.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헌금도 낯설다. 기도만 하면 장의자 밑으로 숨고, 키득거리고, 화장실에 간다. 대표기도문을 만들어 기도 훈련을 하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하게 하고, 예배시간에 성경책을 찾아 읽게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한다.

처음에는 힘들고 막막했는데 지금은 ‘아멘’도 잘하고 찬양도 힘있게 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성경도 곧잘 찾고 서로 먼저 읽으려고 다투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이들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현재 우리 교회는 중등부는 16명, 유초등부는 친한 팀별로 4-5개 팀이 교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방역법에 따른 예배 제한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예배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택을 이사하고 교회를 온전히 아이들과의 예배와 교제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넓어진 공간에 어린이 서적 1,200권을 비치하고 어린이 작은 도서관을 열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날마다 좋은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크고 작은 일탈, 더 기도하는 이유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니 더 거칠어졌다. 이성 교제도 많아지고, 이래저래 다툼도 많아졌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시설물에 락카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10년생 나무에도 페인트를 칠해서 벌금을 내게 되었는가 하면, 다른 2명의 중학생은 학교 주변 길에서 친구랑 장난하다 앞에 가던 녀석과 시비가 붙어서 주먹질을 했는데 옆에 있던 아이가 112에 신고를 해서 경찰이 출동하고, 부모들이 와서 합의하는 상황까지 갔다.

다른 아이는 교회 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마주 오던 승용차와 부딪혀 병원에 실려 갔다. 아이와 부딪힌 승용차는 차량 전면 유리가 완파되었는데 다행히 아이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낮에는 면회가 되지 않아 한밤중에 심방을 가서 기도하고 왔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너의 머리를 감싸 안아서 네가 다치지 않은 것이라고 하니 아이도 많이 놀랐는지 아직 창백한 얼굴로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아이는 퇴원한 지 2주가 지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의 크고 작은 일탈 소식들은 나를 주님 앞에 더욱 엎드리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남학생들은 유튜버 신태일 랩을 따라 하고, 야한 동영상을 보고 저희끼리 정보를 나누고 있는데 교회 교육이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는 실정이다.

스쿨처치(School Church)하시는 전도사님과 함께 학교 옆 공원에서 화요일마다 기도회를 하고 공원에서 예배 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한다.

얼마 전에는 성예방선교회에서 청년진로캠프란 이름으로 성예방 교육을 진행해주셨다. 아이들에게 SNS, 음란물, 왜곡된 미디어 등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을 소중하게 사용해야 함을 가르쳐주자 아이들의 표정에 변화가 보였다.

아이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4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나는 청소년사역자로 소개되고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것은 그저 내 자식같이 사랑하고 보살핀 것뿐인데 과분한 이름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최전방에서 홀로 외롭게 뛰고 있는 나를 위하여 귀한 친구를 붙여 주셨고, 그 친구의 도움과 지방회 교회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교회를 운영할 수 있었다.

착한 남편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재정으로부터 자유하여 아이들을 마음껏 섬길 수 있었다. 어떤 목사님은 열매 없는 애들 목회 그만하고 어른 목회하라고 하신다.

나도 어른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찬양하고 합심 기도도 뜨겁게 하고 싶다. 그런데 전도 나가면 어른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이들만 보이니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생각한다.

학교 근방에 교회가 수두룩 하지만 우리 교회만 유독 아이들이 많다. 성령께서 오늘도 나를 위로하신다. 저녁 시간대에 밖에만 나가면 결석자 심방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만나게 하신다.

나는 그 아이들을 못 보면 쓸쓸하고 우울해진다. 오늘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아이들이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고, 결혼하여 그리스도의 귀한 가정을 세울 때까지 나의 기도는 계속될 것이다.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며 말씀으로 양육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있든지 “나는 크리스찬입니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