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발달장애인 작가 이상욱 청년 이야기(역촌교회)
"나는 야 희망을 그리는 예술가” 고난과 눈물 딛고 ‘미술작가’로 활동 어머니 눈물과 기도가 맺은 신앙의 열매
눈도 잘 못 맞추고, 말도 잘 못해 ‘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작가 이상욱 청년(역촌교회 · 22세· 사진).
얼핏 보면 ‘장애’ 탓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것만 같지만 그는 남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당당히 소통하고 있다. ‘미술’이 그 소통의 도구다.
요즘 ‘짜욱 작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는 그림과 조소 등 다양한 미술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짜욱 작가’
이상욱 작가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스프링샤인’ 소속으로 여러 작품을 선보여 ‘히트’를 쳤다. 이 작가의 작품은 모두 ‘동물’인데, 그의 작품 안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형색색의 이색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동물들의 고유한 특징을 잘 표현한 작품에 이 작가 특유의 색감이 더해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막여우’ 작품 히트쳐
완성된 작품마다 매력이 넘친다. 그중 ‘사막여우’ 작품은 소위 ‘대박’이 났다. 지난해 트로트 가수 영탁이 방송에서 이 작가가 그린 사막여우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방송에 나와서 히트를 친 것이다.
사막여우 캐릭터는 옷뿐만 아니라 다양한 굿즈로 제작되어 지금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후속작으로 그린 배우 성훈의 반려견 ‘양희’ 캐릭터도 연이어 인기를 끌었다. 이 작가는 유명세에 힘입어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도 초청받고, 영화제 티셔츠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발달장애라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덕택이다. 어릴 때부터 미술과 피아노를 배우며 예술가로서 기초를 닦았고, 하기 싫어도 매일 맡은 것은 꼭 해내도록 엄마와 함께 훈련해 이룬 결과다. 어머니 조미화 집사(역촌교회)의 헌신과 인내, 사랑이 이상욱 씨가 ‘작가’로 성장케 했다.
고난의 여정 딛고 작가로 우뚝
조미화 집사는 “상욱이가 4살 때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는데 어떻게 이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수많은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살았다”고 회상하고, “하지만 모진 고통을 넘어서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 열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새 삶을 주셨다”고 말했다. 특히 “장애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늘 주눅 들고 세상에 죄인처럼 살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역촌교회를 출석하며 조금씩 삶이 변화했고, 지금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순간부터 전화벨 소리가 가장 무서웠다는 조 집사는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감당하지 못해 매일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울리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가슴 졸이며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조 집사는 절대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못 하는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옆에 앉혀두고 한글을 가르쳤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반응이 없어 배우는 게 맞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배우고 있다’고 확신하고 반복적으로 가르쳤다. 또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아들이 뭐든 배울 수 있도록 애썼다. 스스로 살아가려면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열심히 좇아다녔다. 그 결과가 ‘작가 이상욱’으로 나타난 것이다.
역촌교회 사랑부 만나자 변화
이 모자의 인생이 크게 변화한 것은 이 작가가 중2때 쯤이다. 당시에 처음 약을 처방받아 먹였는데 거짓말처럼 문제행동이 많이 잡혔다. 하지만 살이 급격히 찌는 부작용 때문에 금방 약을 끊어야했다. ‘역촌교회 사랑부’에 가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다. 그 전에 여러 교회를 다녔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말도 안 통하고 소리 지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떼를 쓰니 어느 교회도 오래 감당하지 못해 떠나기를 바랐다. 그래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는데, 지인에게 역촌교회(이준성 목사)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을 위한 ‘사랑부’를 소개받았다. 하지만 여러 교회를 거친 후라 큰 기대 없이 ‘여기는 또 얼마나 가려나’ 싶은 생각으로 왔다고 했다.
이곳은 달랐다. 모자는 첫 방문 이후 역촌교회에 정착해 10년째 출석하고 있다. “사랑부에서 얼마자 잘 돌봐주시는지, 우리 상욱이가 매주 교회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약을 안 먹고도 폭력 행동이 차츰 줄어들었다. 저도 마음 편히 예배드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변화는 또 있었다. 제대로 문장을 만들지 못해 소통이 어려운 이 작가가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첫 문장은 “상욱이 내일 교회 갑니다”이다. 단답형의 대답을 듣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 이상욱 작가가 지금도 긴 문장으로 말하는 유일한 말이다.
밤마다 손잡고 기도, 응답 나타나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아들은 ‘엄마’ 한번 불러주지 않았다. 아니 소리지르는 것 말고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해 ‘말을 못하는구나’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초3 때 아이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 “아, 이제 고난은 끝났구나. 말문이 트였구나”하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기대는 더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다른 단어 하나 말하는데 또다시 1년이 걸렸다. 아직도 문장을 잘 말하지 못해 대화는 어렵다.
하지만 말만 못 할 뿐 컴퓨터를 잘 활용해서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글로 쓰거나 컴퓨터에서 사진을 출력해 보여줄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역촌교회를 다니면서 모자가 밤마다 손을 맞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던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실타래 풀리듯 풀어졌다고 한다. 조 집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생활 속에서 느끼며 살고 있다”고 간증했다.
파란만장 인생이지만 ‘감사’ 넘쳐
장애아이를 기르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조 집사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8년 전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어깨는 두 배로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홀로 서서 장애아들을 품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2년 전에는 건강을 자부하던 조 집사가 뇌졸중 진단을 받았다. “하나님 언제까지 시련을 주시렵니까” 원망이 나올 법 하지만 조 집사는 오히려 ‘감사’를 고백한다.
“어느 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상욱이 누나가 하도 병원에 가자고 고집을 부려서 한밤중에 응급실을 갔는데 뇌졸중 진단이 나왔고, 마침 뇌혈관 교수님이 계셔서 바로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병원에서도 천운이라고 했다. 하나님 아니면 그날 당장 죽거나 후유증으로 장애가 남을 수도 있었다. 아무 탈 없이 회복한 건 모두 하나님 은혜다.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 집사는 본인이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도 감사하지만 아들이 특기를 살려 미술작가로 살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감사요 기쁨이라고 했다. “내 아들 작품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단독 전시회도 하게 되다니 기적과 같다. 하나님이 내 아이에게 그림 그리고 흙을 빚어서 좋아하는 동물을 만드는 요술 손을 주셨다. 모든 것이 감사 또 감사입니다.”
역촌교회서 ‘이상욱 개인전’ 열려
역촌교회 1층 카페 ‘푸른초장’에서는 7월 25일까지 한 달 동안 ‘이상욱 개인전’이 열려 이 작가의 그림과 도자기 인형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사랑부 김하은 전도사가 이 작가의 작품을 성도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기획한 전시회다. 본인도 기뻐하고 무엇보다 성도들이 따뜻한 관심을 보이며 많은 사랑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조 집사는 아들과 함께 일하는 미래를 꿈꾼다. 동대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엄마와 미술작가 아들이 함께 사업을 일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 집사는 “두드리면 열리고, 구하면 찾아주시면 하나님만 믿고 상욱이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