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인 파워인터뷰/기부천사 김진만 장로
후원 넘어 가치를 실현하는 나눔 실천 부식방지 배관 코팅 업계 1위, 경영혁신으로 산업포장 수상 서울신대에 5억 원 넘게 기부, 기아대책 고액기부자클럽 회원 필리핀에 10년간 IT 인재 양성, 아프리카 아이들 축구로 꿈 심어 말라위에 중고교·신학대 건축도
㈜이노켐 대표이사 김진만 장로(동안교회)는 독보적 기술력으로 부식방식 배관 코팅 업계 1위 기업을 만들었다. 탁월한 경영 만큼 빛나는 것은 나눔의 실천이다. 그의 나눔이 아름다운 것은 후원를 넘어 가치 실현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아낌없이 섬기고 베푸는 그의 삶과 기부 이야기를 들어봤다.
(주)이노켐 대표이사 김진만 장로(동안교회)는 언제부턴가 기부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랫동안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나눔을 실천해온 그는 2015년 11월 기아대책기구에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해 고액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에 15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부인 박선희 권사도 16번째로 가입됐다. 지금도 지구촌 최빈국 말라위에서 학교를 세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교단을 위한 일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신학대학교 법인 이사로 재임하면서 총 5억 2천만 원을 기탁했다. 성결교회역사박물관 건립에도 2천만 원을 기부했다.
사고로 다시 만난 하나님
그의 아름다운 나눔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자리하고 있다.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 철길에서 큰 사고를 당해 손이 부러지고 머리를 다쳐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당시 고모가 찬송을 부르며 지키던 병실에서 3일 만에 깨어났지만 교회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청년 때에도 여러 차례 전도를 받았지만 교회당 앞문으로 들어가서 뒷문으로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
1984년 동안교회에 출석했지만 신앙심은 그리 깊지 못했다. 1980년대 초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그는 퇴직금 15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회사의 대리점으로 시작했지만 기계 설비까지 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런데 1990년 직원이 40명쯤 되었을 때,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왔다. 대전 지역에서 고속도로 결빙으로 가족이 함께 타고 가던 차량이 전복된 것이다.
야속하게도 십일조 헌금을 처음 내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내와 두 자녀는 무사했으나, 김 장로는 머리와 얼굴을 크게 다쳤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할 정도로 상처가 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사업이 한창 잘 나가던 때인데, 직접 나서지 못하니 내리막 길을 겪게 됐고 직원이 떠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신앙 위에 다시 세운 회사
그러나 시련을 통해 그는 단련되었다. 위기의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김 장로는 “기복적 신앙도 조금 있었는데,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비교할 수 없고, 믿음과도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후 내 뜻보다 하나님 뜻을 묻는 신앙생활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통받는 이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사람을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내 뜻대로 살면서 세상 유익에 매였던 시간은 지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니 길이 보였다”며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믿게 돼 이웃들의 고통도 보고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너진 신앙이 회복되자 움츠러든 그의 인생과 사업도 다시 일어났다.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에서 그는 1995년, 무너진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가 재설립한 ㈜일진레이텍은 지역난방용 연결 자재 및 부속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국내 1위에 우뚝 섰다. 2018년에는 국가 생산성 대상에서 중소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한민국 산업포장’까지 거머쥐었다.
김 장로는 “하나님의 뜻을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일을 시키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후 부터는 계획했을 때 바로 순종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식방지 업계 1위
이런 믿음 때문일까. 김 장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제품의 국산화를 위해 2011년 4월 ㈜이노켐을 또 설립했다. 산업 현장의 경험을 발휘한 그는 산업혁신운동을 통해 마침내 고품질의 ‘파이프 배관 코팅 방식의 테이프와 열수축 제품’을 개발했다.
이노켐이 개발한 열수축형 제품과 콜드 테이프는 고무와 폴리에틸렌의 접착성을 강화시켜 극심한 기후 차이에도 견고하고 코팅 후 땅에 매립 시 박리 현상이 없다. 특히 40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품질 보증이 가능하다. 이 제품은 전 세계에서 5개 기업만 생산하고 있다.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6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경기도 수원과 평택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나눔 문화 활성화에 앞장서다
이런 경영 성과보다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건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는 삶이다.
동안교회를 건축할 때는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사 놓은 793.3㎡(240평) 땅과 아내 소유의 아파트도 바쳤다. 2000년대 초에는 동안교회의 선교에 동참하여 태국과 필리핀에 교회당 건축을 후원했다.
김 장로는 특히 필리핀 딸락과 마닐라에 IT 센터를 세워 IT 인재 양성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2008년부터 컴퓨터 30대를 지원하여 교육하고 매달 5천 달러씩 9년 6개 월 간 지원했다. 그 결과, 어려운 환경에 150명의 학생이 IT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600명이 졸업하여 직장에 들어갔다.
필리핀 선교에 집중하던 그의 마음을 다시 뒤흔든 것은 아프리카였다. 우연히 TV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가 가정 먼저 한 일은 축구를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개최하는 ‘기아대책 HOPECUP(이하 호프컵)’에서 그는 아프리카 팀의 구단주가 되어 주었다. 2016년과 2018년 말라위와 코트디부아르 축구팀의 구단주로서 선수 30명을 한국에 초청했다.
그의 후원 덕분에 비닐을 감아 만든 공을 맨발로 차던 아이들은 새 축구화를 신고 처음 온 대한민국에서 우승까지 했다. 당시 말라위 대표팀의 한국 체류 경비를 전액 후원한 김진만 장로는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자는 뜻으로 후원했다”고 말했다.
척박한 땅에 뿌린 배움의 씨앗
이렇게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그는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지역에 기부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17년에는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 희망중고등학교 교실 8개 동을 건축했고, 2018년 운동장과 1,000명이 들어가는 강당을 신축했다.
또 2020년에는 도서관을 건축했다. 처음엔 학생이 180명에 불과 했지만 지금은 1천여 명이 넘는 학교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1950~60년대가 떠오를 정도로 열악한 말라위는 이제 그에게 특별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수도 릴롱궤에서 29Km 떨어진 경제도시 나텐제에 신학대학교와 부대 시설을 짓는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김 장로는 “기부는 마음에 감동이 있을 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행동하면 기쁨과 행복은 배가 되어 돌아온다”며 “나눔을 통해 어느 곳에 있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다짐했다. 후원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 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김 장로는 따뜻한 인류애를 꽃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