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성결인 김소엽 권사(신촌교회)

시로 복음 전하는 ‘문화예술 선교사’ 복음 담은 시로 희망과 사랑 울려 별과 시만 보고 달려 남편 잃고 고통 중 비로서 시가 터져 문인선교회 설립 등 예술선교회 거목 

2021-05-27     황승영 기자

   오늘을 위한 기도            -김소엽-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있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격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느님을 찬양하며 ​

천하를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 나누며 오늘 하루 살게 하소서

“단 한 줄의 시를 남겨도 좋으니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시를 쓰시오.”

딸 아이 12살 때 갑자기 소천한 남편이 남긴 이 유언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요, 시의 원천이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남은 상실감에서 나온 시가 바로, ‘부서져야 하리’이다.

당시 출렁이는 남해 바다에서 죽고 싶었던 그녀는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이생의 욕심이 하얗게 소금이 될 때까지/무너져야 하리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 억만 번 부딪쳐 푸른 상처로 질펀히 드러눕기까지/…씻겨야 하리 더 많이 씻기고 또 씻겨 제 몸 속살까지 하늘에 비춰야 하리…”라는 시로 다시 일어섰다.  

사실, 그녀가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 것도 급작스런 상실감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그해 백일장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로 장원을 수상한 후부터 시인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하늘의 별을 보고 영원을 동경한 이후, 66년 동안 별과 시를 벗하며 살았다. 기교나 기술로 단번에 쓴 것이 아니라 절망감에 빠져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하늘의 별,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을 때 비로소 시가 터졌다고 한다. 그가 쓴 시처럼 말이다.

“꽃이 그냥 스스로 피어난 것은 아닙니다…/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보이지 않는 그분의 섭리와 은혜가 있은 까닭입니다.”

김 권사의 문학은 삶과 신앙이었다. 영혼을 울릴 만한 시를 쓰기 위해 한평생 하늘과 별, 그리고 시만 보고 달려왔다.

그는 “신앙과 시는 내 삶을 견인해준 두 수레바퀴였습니다. 캄캄한 사막 같은 고난 중에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셨고, 이 사랑이 내게 시로 다가왔으며, 이 시가 비로소 하늘의 별이 된 것 같습니다”고 고백했다.

1978년 ‘밤’ ‘방황’ 등으로 ‘한국문학’(서정주 박재삼 심사)의 신인상을 받고 등단한 그녀는 ‘그대는 별로 뜨고’ ‘사막에서 길을 찾네’ 등 시집 15권과 1,000여 편의 시, ‘사랑 하나 별이 되어’ 등의 수필집을 펴냈다. 특히 1987년 6월 문학세계사에서 ‘그대는 별로 뜨고’라는 시집을 펴낸 후 명성을 얻었다.

이 시집은 당시 가택연금을 받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해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승화한 ‘죽음은 마침표 아니다’라는 시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죽음은/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게는/끝없는 물음표//그리고/의미 하나/이 땅 위에 떨어집니다/어떻게 사느냐 하는/따옴표 하나//이제 내게/남겨진 일이란/부끄럼 없이 당신을 해후할/느낌표만 남았습니다. (김소엽,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자연, 사람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표현한 김소엽 시인은 김소월 윤동주 등 우리나라 서정시인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재 중앙대 교수는 “김소엽은 가장 전통적인 가락을 살리면서 한국의 서정시를 맥을 이은 김소월, 윤동주의 맥을 이어가는 시인이다”고 평했다.

신앙시로 한국문학상, 윤동주문학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런 평가를 뒷받침 한다. 그녀가 별과 사랑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후 그녀의 시는 노래로 작곡 되어 13여회 100 여편 공연되었다.

찬송가 553장 ‘새 해 아침 환히 밝았네’,성가곡 ‘오늘을 위한 기도’, ‘부서져야하리’ ‘바다에 뜬 별’ 등이 복음성가로 많이 불리고 있다. 전국에 그녀의 시를 기념하는 비가 8곳이나 된다.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시로 노래한 것 이외에도 그녀는 각종 문서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월간 ‘주변인의 길’ ‘낮은 울타리’ ‘주부편지’ ‘십대들의 연’의 편집위원과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군선교 전문매체 ‘군복음화보’에 사랑의 에세이 편지를 오랫동안 기고해 왔다. KBS 한국방송 라디오와 CBS 새롭게하소서. 극동방송 등 방송 진행자로 활약했다.

김 권사는 시인으로 시와 문학에 뛰어나고 그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봉사활동에도 앞장섰다. 직장인선교회, 3.1절 기도회 때에 축시, 기도시 등 수많은 시를 쓰고 직접 낭송도 했다.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국제기아대책 홍보위원, 고어헤드 선교회 고문, 문서전도 사랑나눔 콘서트 불웃돕기 등 수많은 봉사활동을 펼쳤다.

2005년 11월 21일 암수술을 받고도 2주 후 고아를 위한 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을 정도로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무엇보다 김소엽 권사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대로 황무지나 다름없는 기독교 예술단체와 선교를 살리는 일에 매진해왔다. 특히 문화선교의 사명을 갖고 뛰는 크리스천 문화·예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숨은 역할을 했다.

1992년 문인선교회를 창립하고, 차츰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사진 건축 국악 방송 연예 등 각 예술 분야에서 기독문화를 지향하는 ‘기독문화예술총연합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문인선교회에서는 해마다 국민일보와 기독신춘문예 공모를 통해 많은 기독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문화예술계가 어렵다보니 자연스럽게 희생과 헌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대학 강의와 방송, 밤에는 원고를 쓰고, 주말에는 간증예배와 특강으로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한 대가를 예술단체 운영과 행사에 수없이 내놓았다.

그렇게 몸을 혹사 하다보니 암투병을 하기도 했고,  주변의 질시도 받고, 때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말씀으로 이겨냈다.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한 영혼을 울리는 시 한 편을 남기고 문화예술 선교사로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소원이다. 

시집
1987년 그대는 별로 뜨고] 문학세계사 (24쇄-베스트셀러 시집)

1990년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둥지(3쇄)

1991년 [어느날의 고백] 종로서적(3쇄)

1993년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립 풀어 놓고] 베드로서원 (8쇄)

1995년 [마음속에 뜬 별] 마을 {3쇄) 2003년 [하나님의 편지] 두루 (4쇄)

2008년 [사막에서 길을 찾비]문학세계사 {2쇄) 2012년 [꽃이 피기 위해서는] 시와 시학사

2012년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시월

2014년 [별을 찾아서] 인간과문학

2019년 [풀잎의 노래] 언어의 집(언어의집 시인선005)

2019년 [별무리-星團] 시선사(한국대표서정시선)

영시집

2004년 제1권 [My Star .MY Love]-2004 한림출판사

제2권 [At the We i I ]

제3권 [ I n Case You May Drop By]

2005년 서독 프랑크 프르트에서 열린 세계 도서 박람회에 영시집 3권이 한국 대표서적으로 출품

경력

1992~현재 한국 기록교 문화예술 총연합회장

2001~현재 한국찬송가공회가사위원장  

2002~현재 국제기아대책 홍보위원

2014-2015,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 2021년 3월 성산효대학 이사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