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산의 마더 테레사’ 추명순 전도사…섬교회 8곳 세워
“복음 위해 섬 끝까지 가겠다” 소명 하나로 복음열정 불태워
지금은 새만금 방파제와 연륙교가 생겼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군산의 섬들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꼼짝없이 2~3일씩 발이 묶였던 낙도였다. 놀라운 것은 이 낙도지역에 9곳의 교회가 있는데 이중 8곳이 성결교회라는 점이다. ‘고군산의 마더 테레사’로 불렸던 추명순 전도사의 헌신과 복음전파에 대한 노력이 교회라는 귀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당시 51세의 고령으로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드렸던 추명순 전도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지옥 같았던 결혼생활
추명순 전도사는 1908년 충남 보령시 웅천 출신의 유교 집안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녀는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서천으로 시집을 갔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기록에 따르면 추 전도사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참으로 지옥이었다”고 표현했다. 남편은 첫 아들을 낳자마자 외도를 했고 결국 20살도 안 되어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런 결혼생활을 수년 간 보내던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정화수 같은 것에 빌어도 소용없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며 전도를 했고 서천 비인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인생의 절망에서 시작된 첫 신앙생활이었다.
“섬 끝까지 가서 전도하겠습니다”
예수를 믿고 기도하자 가슴이 후련해지며 알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다. 오랫동안 남편 때문에 마음에 쌓였던 원한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만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귀한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솟구쳐 올라 견딜 수 없었다.
그때부터 추 전도사는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했고, 이 마을과 저 마을로 다리가 퉁퉁 붓도록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 그럴수록 남편의 핍박도 점점 심해졌고 아들마저 병으로 죽자, 남편의 집안에선 아들의 죽음을 빌미로 그를 쫓아냈다. 그녀는 그럴수록 예배당을 방주 삼아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후 추 전도사는 지방신학교를 졸업하고 정식 전도사가 되어 서천과 김제에 교회를 개척하고 충남 안면도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추 전도사는 전 총회장 김용은 목사(군산중동교회)가 이끄는 부흥회에 참석하게 된다. 김용은 목사는 추 전도사에게 “섬에 가서 교회를 전도하겠느냐”고 물었고 추 전도사는 “복음을 전하는 곳이면 섬 끝까지라도 가오리다”라고 대답했다.
8개의 섬 교회를 개척하다
김용은 목사의 지원을 받게 된 추명순 전도사는 1970년대 중반까지 20여 년간 8개의 교회를 세웠다. 새로 개척한 곳도 있고, 문 닫은 교회를 다시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섬을 장악했던 무당들의 방해와 협박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추 전도사는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어 섬에 갇히게 되면 제일 높은 산에 올라 바람이 잦아들때까지 기도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각 섬마다 그녀만의 기도처가 있을 정도로 그녀는 기도에도 몰두했다. 복음을 전하면서 기적도 많이 일어났다. 무녀도에서는 한 아이가 귀신이 들려 고통받고 있었는데 추 전도사의 기도로 말끔하게 나았으며 술로 연명하던 알콜 중독자들이 술을 단번에 끊는 역사도 일어났다. 이런 기적과 이적이 수없이 일어나자 미신이 팽배한 섬에서 예배가 제사보다 더 대접받게 되었다. 추명순 전도사는 그렇게 기도를 무기 삼아 섬마다 돌았다.
그러나 섬 사역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때로는 밥을 먹지 못해 굶주림과 싸워야 했고, 섬 주민들의 냉대와 핍박도 견뎌내야 했다. 당시 교역자가 부임하면 “언제 도망가십니까?”하고 묻는 것이 인사였지만, 그녀는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했다. 추 전도사의 이런 열정으로 결국 각 섬에 있는 성황당들은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김용은 목사는 성경책과 구호 물품을 보내며 추 전도사의 사역을 지원했고 물품을 나눠주며 섬 아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마지막까지 복음전도에 힘쓰다
추 전도사의 마지막 사역지는 고군산도에서도 가장 끝섬 말도였다. 당시만 해도 말도는 군산에서 배를 타고 4시간 정도 걸렸는데, 풍랑이 심해서 바람이 심하게 불면 한 달이라도 배가 오도 가도 못하는 낙도 중의 낙도였다. 추 전도사는 이곳에 교회를 짓고 24년간 사역하다가 후임 교역자를 세우고 대전성락원에서 안식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사람들과 24년을 함께 살았던 추 전도사에 대해 고군산 주민들은 그녀를 다정한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녀는 은퇴 후에도 가끔 섬을 방문하고, 섬 지역 복음화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다가 1994년 11월 28일 소천했다.
추명순 전도사 기념관 세워진다
섬교회의 어머니 추명순 전도사를 기억하는 기념관 건축이 추진되고 있다. 군산지방회는 추명순 전도사의 헌신을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해 ‘추명순 전도사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기념관 건축을 준비 중이다. 이미 1억여원을 모금해 말도의 경로당 건물을 매입했으며 2~3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추 전도사의 열정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총회에서도 1,000만원을 지원하며 추명순 전도사의 삶과 사역을 알리는데 협조하기로 했다. 기념사업회 공동위원장 서종표 목사는 “전남 신안에 문준경 전도사님이 계신다면 군산 고군산에는 추명순 전도사님이 계신다”며 “당신의 몸이 쇠약해져 교역자 안식처인 대전 성락원에 가실 때까지 24년을 헌신하셨고 이분을 통해 고군산지역에 8개 교회에 세워졌다. 이분의 헌신적인 사역과 삶을 함께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