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십자가 위에서의 전도
(눅 23:32~43)
지금 이 시대는 전도하기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명령인 복음전파는 멈추지 않아야만 합니다. 십자가위에서도 전도하신 예수님과 이 땅의 사람들과의 차이를 살펴보면서 전도하기 참 어려운 이 시대에서의 전도의 본질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갖고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최대한 전도를 쉽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꿈꿉니다. 쉬운 전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는 한 영혼을 십자가 앞으로 데려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전존재의 주인을 바꾸어놓는 문제이기에, 본인의 의지와 결단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 속에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로마 군병, 행악자-을 통해 이 시대의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복음에 대한 태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삶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며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하지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제비를 뽑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돈이나 성공을 쫓아서 자신의 삶의 시간들을 쏟아냅니다.
두 번째, 구원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이 점점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모든 영혼들의 구원의 문제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반면에,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를 극복할 수 있는 현세적인 기적을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한 번도 반항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낮아지며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반면에 로마군병들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과 멸시를 서슴치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비방이 아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세상속에서 구원받아야 할 준비된 영혼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 있었던 두 죄인도 태도가 전혀 달랐습니다. 우선 한 행악자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행악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히려 죄에 대해 둔감한 행악자를 꾸짖으며 자신의 죄를 시인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깨닫지 못한 무지한 한 행악자는 현재의 십자가를 벗어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현세적 구원을 요청했지만, 다른 행악자는 하나님 나라에 거하고자하는 내세적 구원의 요청을 하게 됩니다.
가장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속에서도 구원을 외치는 한 영혼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고 포기하지 말아야할 중요한 임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결국,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한 한 행악자는 십자가라는 가장 처참하고 낮은 자리에서 주님의 구원의 기쁜소식을 듣고 약속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절대절명의 생사의 위기속에서도 한 영혼을 포기하지는 주님의 구원의 열심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전도의 결과는 애초부터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도가 열매를 맺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 식으로 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전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2011년에도 예정된 주님의 구원의 계획은 시작되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한 영혼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힘쓰셨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도 우리의 환경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