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창 15:1~6)
오늘 아브람이 두려워합니다. 까닭이 무엇일까요?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318인을 데리고 그돌라오멜왕과 싸워 이겼지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장막에 들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환경과 처지를 보면 늘 그렇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만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친 파도에 베드로는 눈과 귀를 빼앗겼고 그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깊은 물 속에 빠졌습니다. 그게 베드로이고, 그게 아브람이고, 그게 사람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내 속에 있고, 이런 아브람이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고 애굽의 말과 그 말 탄 자들이 물 속에 던져진 것을 보았습니다. 온 백성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목마름이 찾아 왔을 때 다시 불신앙에 빠져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불평하고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불신앙은 늪입니다. 빠지면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두려움을 묵상하면 그 두려움은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불신앙은 또다른 믿음이기에 그렇습니다.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품고 묵상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고 묵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묵상할 것은 문제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과 입에서 떠나지 말아야 할 것은 환경과 처지가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불신앙의 늪에 빠지면 인본주의가 머리를 듭니다.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서 멋지게 단을 쌓았습니다(창 12:7).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기근이 있자 애굽으로 내려갑니다(창 12:10).
오늘 아브람에게 두려움이 찾아오자 아브람이 다메섹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창 15:2~3). 말씀이 희미하니 두려움이 오고 인본주의가 아브람을 사로잡습니다. 이런 아브람, 두려움과 인본주의에 빠진 아브람을 찾아오신 분이 오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아브람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말씀으로 소망을 찾고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환경과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버리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 말라. 함께 할 것이니 사슴의 발처럼 하고 다녀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네가 318인으로 왕들을 이긴 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 그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환경과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아브람의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계십니다. 반복입니다. 불신앙이 반복되기에 하나님께서 반복하여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창 12:2). 티끌처럼 셀 수 없는 자손들을 주겠다(창 13:16). 뭇별처럼 셀 수 없는 자손을 주겠다(창 15:4). 이렇게 반복하여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식적 동의가 아니라 체질을 바꾸라는 얘기입니다.
고난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기도 응답이 늦어지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계속 말씀만 주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신 8:2~3). 지식적인 동의가 아니라, 감정적인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라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아브람이 두려움에 빠지고 인본주의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회복합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십니다(창 15:6). 아브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우리 속에 연약한 아브람이 있지만 믿음으로 사는 아브람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고 두려움에 살아가기도 하지만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고 힘을 얻어 장막 안에 숨어 사는 인생이 아니라(창 15:6), 동서남북을 바라보고(창 13:14), 종과 횡으로 다녀보며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창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