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길 포기하고 독립투사의 삶 선택
지독한 무신론자에서 성별회서 진실한 믿음과 삶 얻어

일제시대 타락과 번민, 실망과 자살에서 구원을 얻는 사람이 있었다. 3.1 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 배동석 지사다. 그는 의사의 삶 대신 독립운동에 청춘을 바쳤다.

얼마 전, KBS ‘다큐 세상’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삶을 조망했다. 그러나 그가 성결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 한때 극심한 무신론에 빠졌던 배 지사가 경성성서학원에서 열린 40일 기도회에서 완전한 은혜를 받고 성결을 체험했다는 사실은 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배동석의 성결은혜기는 활천 3호, 4호(1923년 2월호. 3월호)에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배동석 지사는 1894년에 설립된 김해장로교회 창립자 배성두의 아들로 알려졌다. 이명직 목사는 “(배동석) 군도 어려서는 그 부모의 신실한 믿음에 함양을 받으면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더라”고 기록했다.

그는 3.1운동 이전 이미 대구 계성학교에 다닐 때부터 독립운동에 관계돼 일제로부터 3개월간 고초를 치렀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1910년 목포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다시 배일 혐의로 체포됐다.

그 후 만주로 망명해 김좌진과 함께 활동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1918년 귀국한 그는 늦은 나이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의학도의 길을 가던 중 3.1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배 지사는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자 동료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당시 세브란스의전 영남 학생친목회장이었던 그는 학생들을 3.1운동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 3월 1일 파고다공원 독립선언식에 참석했으며, 3월 5일 남대문역 광장에서 열린 학생단의 제2 독립만세 시위에도 참여했다.

김해 만세운동 주도
배 지사는 특히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의 지도를 받고 마산에 파견되어 3.1운동에 참여할 사람들을 규합하는 일도 담당했다. 같은 달 김해로 내려온 그는 동상동 전통시장 주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에 체포됐다. 그의 만세를 계기로 김해지역에서는 연달아 만세시위가 이어졌고, 배 지사는 1920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성품이 곧고 대한독립의 의자가 확고했던 배동석은 독립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해 온 경력이 있음에도 관련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로부터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의 유족에 따르면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회유와 전향을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했던 이는 유관순과 배동석 두 사람이었다고 한다. 배 지사는 재판장 앞에서도 “내가 감옥에서 나가는 날로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하리라”고 외치는 등 끝까지 결의에 차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핵에 걸렸던 그는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치료 중 1924년 8월 29일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알려진 그의 이야기다. 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진정한 성결인이었다.

지독한 무신론자 “동양선교회는 파멸당해야”
그와 성결교회와의 첫 인연은 경성 연동경신중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당시 김상준 목사가 설립한 동양선교회성결교회(복음전도관) 예배에 참여한 이명헌 씨와 원세성 씨가 그곳에서 받은 은혜를 연희교회에서 간증했고 배동석은 당시 이들의 간증을 듣고 오히려 “동양선교회는 국가와 사회를 해롭게 하고 사람을 미신으로 인도하니 폭발탄을 던져 파멸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브란스의전에 입학해서도 “교회는 미신적이요 비과학적이다. 과학 이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영혼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영혼도 없고 하나님도 물론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급성폐결핵으로 죽음 선고
독립운동으로 경성형무소에서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에 시달린 배동석 지사는 급성폐결핵을 선고받게 된다. 병으로 형무소에서 나온 그는 곧바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지만 의사들은 그에게 “2주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죽음을 선고한다.

그만큼 그의 병은 깊었고 당시 의술로는 결핵을 고칠 수 없었다. 특히나 평소 술과 방탕한 생활로 건강이 안 좋았는데 감옥에서 받은 고문은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을 선고받은 배동석은 비통함을 느끼며 그동안 부인했던 하나님까지 원망했다. 그는 “만일 우주와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어떻게 이런 고통을 주시고 불공평하게 창조하셨는가”라고 따졌다고 한다. 또한 인생의 나락에 빠졌다는 비참함에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배동석 지사가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은 같은 병실을 사용하고 있던 성결인 이정설의 전도 때문이었다. 당시 이정설은 동양선교회 예배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병실에서 늘 성경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배 지사는 이런 이정설을 보면서 진실한 믿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배 지사는 이정설의 인도로 모교다리 예배당에서 오전예배를 드리고 오후 성별회에서 성결이라는 설교를 듣고 성결의 은혜를 구하게 되었다. 또 경성성서학원 40일 기도회에 참석을 결심하고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날부터 그는 10일 동안 자복하고, 쏜톤 목사의 심령적 강연을 듣고 완전한 은혜, 성결함을 확실히 받았다고 이명직 목사는 전하고 있다. 

이후 배 지사는 온전한 신자의 삶을 다짐하고 아현교회 예배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소천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인하고 오히려 비판하기 위해 교회를 다닐 정도로 반 기독교 정신이 투철했던 배동석 지사였지만 결국 죽음 직전에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며 생명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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