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이란 벼랑 끝에서 신앙으로 다시 일어나
“경제 어려워도 영적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고비마다 기도로 매달려·장애인 고용도 앞장

“부도가 나면서 교회 가까이로 왔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영적으로는 주님과 더 가까워졌지요.”

곤지암교회 조성태 장로(한국척주장애인협회 사업본부장·사진)는 인생에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기적같이 다시 일어섰다. 가구사업을 하다가 부도와 파산에 몰렸지만 벼랑에서 추락하는 그에게 부활의 꿈을 안겨준 것은 신앙이었다.

2004년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사업도 신앙도 꼬이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다.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조 장로 부부가 함께 곤지암교회(백성도 목사)를 찾았는데, 눈을 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백성도 목사였다. 백 목사는 교회에 등록하겠다는 그에게 대뜸 “목사에게 사기 당해봤냐?”며 “안 받아 주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개척교회에서 사기를 당할 각오로 신앙생활할 자신이 있으면 등록하라’는 의미였다. 처음엔 무슨 뜻인 줄 몰랐지만 그 의미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곤지암교회는 성도도 거의 없는데다 사채를 쓰고 있어서 재정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얼마 후에는 교회당에 화재가 발생했다. 급기야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해 교회당이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목사한테도 사기를 당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 장로 부부는 가구사업에서 번 돈을 묵묵히 교회의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인생은 얄궂었다. 교회도 힘든데 사업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사무용 가구로 제법 명성이 있었던 (주)갑일가구 대표이사였고, 40대 젊은 나이에 가구조합의 임원까지 올랐다. 국내 기업과 학교 뿐만 아니라 러시아 은행에도 납품했다. 필리핀에 공장을 차리고, 중국에 매장이 있을 정도로 잘 나갔다. 한해 매출만 100억 원이 넘었다.

하지만 미국 발 금융위기로 건설회사들이 연쇄 부도 나면서 버티기가 힘들었다. 돌아오는 어음을 회수할 길이 없었다. 여러 번 부도를 맞았고, 결국 2007년 폐업했다. 소유한 땅과 집, 자동차까지 팔았지만 은행권 빚도 다 갚지 못했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그는 보증금 낼 돈이 없어서 주인에게 각서를 쓰고, 교회 근처에 16평 월세를 얻었다. 석 달 후 보증금을 낼 500만 원을 손에 쥐었지만 그마저도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교회에 드렸다. 당시 교회는 수도세와 전기세도 못 낼 형편이었다.

이때부터 조 장로의 가정과 교회의 재정이 통용되었다. 가구 유통으로 돈이 생기면 교회 재정부터 채웠다. 그러다 힘들면 교회서 엎드려 기도하고, 성도들 이 서로 껴안고 울면서 그렇게 위안을 얻었다. 하루하루가 고비였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할 정도로 기도제목이 없는 날이 없었다.

조 장로는 “어려울수록 기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매일 기도수첩을 쓰면서 기도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삶은 고단하고 힘들었어도 신앙은 오히려 단단해지고, 교회도 영적으로 더 든든해진 것이 이 때부터였다는게 그의 고백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천국을 소유하고,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이 조 장로의 상황과 딱 맞았다.

낙담이나 원망 대신에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조 장로에게 회생의 기회가 찾아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당시 그의 삶을 짓누르고 있던 사채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금융감독원과 경기경찰청에서 사금융 규제와 단속에 나서면서 더 이상 사채를 갚을 필요가 없어졌다.

‘처음부터 다시’라는 마음으로 시계 바늘을 창업 시점으로 다시 돌려놓은 조 장로는 한국척수장애인협회와 손잡고 가구사업에 다시 뛰어들었다. 사업본부장을 맡은 그는 공기업과 관공서에 가구납품도 하고 장애인 취업과 고용, 장애인 복지와 자립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럴수록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4개 공장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 부도를 낸지 4년 만에 신앙의 힘으로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조 장로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세월이었지만 교회에서 봉사하고 같이 아파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나고 보니 시련과 역경이 나를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강하고 성숙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거꾸로 된 축복’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가 회복되자 교회도 회복되었다. 조 장로 등 성도들의 피땀 어린 헌신으로 많은 빚을 갚았다. 잃어버릴 뻔 했던 땅도 되찾았다. 전도와 선교의 향기와 열매도 맺히고 있다. ‘영원한 내 꺼는 없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한 그는 욕심을 내려놓고 신앙과 선교에 우선을 두고 있다. 해외선교사를 후원하고, 중국 가정교회의 지도자를 한국에 초청하는 일도 감당하고 있다. 교인들의 단기 선교를 지원하고 교회 리모델링비를 헌납하는 등 아낌없는 헌신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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