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오가며 독립운동 적극 지원
서울신대 현대기독연, 피치 부부 행적 조명

“중국은 사실상 (한국의)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부터 가장 먼저 고통을 받았으며 임시정부는 이들과 가장 열심히 싸울 것인데 (유엔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임시정부는 충칭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제럴딘 피치 선교사(사진)가 1943년 1월 15일 상하이이브닝포스트에 기고한 ‘한국의 상황’이란 제목의 글 일부이다.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와 한국정치외교사학회(회장 김명섭 교수)는 지난달 22일 서울신대 우석기념관에서 ‘한·미 관계와 기독교 특별 심포지엄’을 열고 피치 선교사 부부의 행적을 조명했다.

박명수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피치 부부는 1922년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장성을 암살한 후 피란 온 김구 일행을 자신의 집에 한달 간 보호해 주고 일본이 안창호를 체포해 국내로 송환했을 때 그가 죄가 없음을 언론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특히 피치 부부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이승만의 요청에 따라 국민당정부에 한국을 위한 편지를 쓰고 미국 언론에 한국의 임시정부를 알리는 일에도 동참했다. 

중국과 미국에서의 인맥을 통한 독립운동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부인 제럴딘 피치 선교사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아내 쑹메이링 여사를 통해 임시정부 승인운동을 도왔으며 미국 루즈벨트 영부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또 1942년 워싱턴에서 열린 한인대회에도 참가해 연설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적극 나섰다. 특히 해방 후에는 남편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교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여성지도자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김명구 박사(연세대)가 ‘초기 한미관계와 기독교’, 오일환 박사(한양대)가 ‘3.1운동과 미국, 그리고 기독교’, 윤정란 박사(서강대)가 ‘1960년대 한미관계에서 기독교의 역할:미국 선교사 제임스 레이니의 한국 활동을 중심으로’, 이은선 박사(안양대)가 ‘1970년대 한미관계와 민족복음화운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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