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난간대 업계 압도적 1위 일궈
발코니 난간대 제작·시공 전문업체 … 현재 7개 회사로 지경 확대

▲ (주)승일실업 회장김재웅 장로(강서교회)

(주)승일실업의 회장 김재웅 장로(강서교회·사진)는 탄탄한 중소기업을 이끄는 기업가로 건축업계에서 유명하다.

승일실업은 아파트 등 발코니 난간대와 계단 난간대를 주력으로 생산, 시공하는 전문업체로 국내 업계 1위이다. 특히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재웅 장로는 “이전에는 베란다 난간이 다 스테인레스였는데 우리 회사에서 녹이 안 생기게 합금 처리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공급한 이후 난간대 시장이 확 바뀌었다”면서 “아파트든 주택이든 두 집 중 한 곳은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난간대가 설치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승일실업은 새로운 난간대를 개발해 시장에 혁신을 몰고 왔다. 현재 주로 발코니에 사용되는 난간이 바로 그 제품이다.

끊임없는 연구·개발
업계 경쟁력 높여
공장 내 교회 지어
직원들 복음전도도

승일실업은 1992년 처음 울타리 관련 특허를 취득한 이래로 지금까지 총 57개 특허(의장등록 및 유사의장등록)를 받았다.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서 ISO인증도 획득했다. 충분할 것 같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계속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출시하고 있다. 이제는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많아졌지만 원조의 노하우에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 아직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어 경쟁력은 계속 상승 중이다.

유아용품, 환기창 등 7개 사업체 운영
승일실업이 난간부분 업계 1위라는 건 사실 업계에서는 뉴스도 아니다. 독보적인 1위를 오랫동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장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정신으로 승부해 현재 사업체 7개를 운영하고 있다. 선대 회장인 아버지 고 김상용 장로가 승일기업을 창립하고 건일산업과 우진유조를 시작했고, 김 장로가 사업의 바통을 이어받은 후 7개 업체로 확대시킨 것이다.

PVC창호를 제작하는 건일산업(주),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건축, 개발하는 (주)서울건축PCM건설, 유류운송 (주)우진유조, 유아용 완구와 레저용품을 수입, 판매하는 (주)펜에스아이, 베트남 현지에 설립한 (주)코리아윈도어 등이다. 천안과 연천에 9만9,174㎡(3만평) 규모의 공장도 2곳이 가동 중이다.

특히 이중 (주)휴테코는 국내 유일의 환기창 1등급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는 회사로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환기창 기능을 1등급 받기가 어려운데 휴테코 제품은 1등급을 받아 화제가 됐다. 이 밖에도 국내외 특허를 다수 보유한 휴테코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협력해 아파트 환기와 층간소음, 누수문제 등의 해결방법을 계속 연구 중이다.

 

▲서울 대림동 (주)승일실업 사옥 회장 집무실에서.

회사 경영 하나님께 맡겨
승일실업은 고 김상용 장로가 1988년 설립한 대일실업(주)이 전신이다. 김재웅 장로가 입사한 이듬해인 1998년 (주)승일실업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삼성그룹과 LG상사에서 업무를 익힌 김 장로는 아버지를 보좌해 승일실업을 업계 1위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지금처럼 회사가 안정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김 장로 입사 직후 아이엠에프가 닥쳐와 건설 경기가 바닥을 쳤다. 설상가상 미국의 건설경기도 얼어붙어 ‘건설은 죽었다’는 소리가 나돌았다. 김 장로는 “사람들이 2세가 들어와서 회사를 망하게 한다고 말이 많았다”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경기침체가 오래가서 어려움이 컸다. 매일 아침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양을 부르며 출근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너무 힘들어 기도가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기도할 때마다 “저에게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느냐”고 원망하는 기도가 쏟아졌다고 고백했다. 400명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계가 그의 손에 달렸기에 기도는 간절함을 넘어 절박함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서 그는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부터 김 장로의 기도내용이 바뀌었다.
“하나님은 항상 피난처를 예비해 주시지요. 저에게 이 환란을 이겨낼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 회사를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하나님 사업에 쓰임 받는 사업체가 되도록 해 주소서.”
회사는 점차 회복되어 2015년에 완전히 회복됐고 현재는 이전보다 더 크게 성장해 다양한 분야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김 장로는 회사가 살아나자마자 직원들 임금부터 올렸다는 점이다. 무려 30%를 인상했다. 김 장로는 “함께 고생한 직원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더 힘내서 함께 회사를 키워나가자는 뜻에서 임금을 올렸다”며 “인금 인상 이후 능률과 실적이 함께 올라갔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상용 장로의 신앙 승계
회사를 이렇게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신앙과 인생의 멘토였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 경영을 맡겼기 때문이다. 4대 성결신앙의 대를 잇고 있는 김 장로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예배에 충실하고, 교회개척과 목회자 돕기에도 물심양면으로 헌신해 왔다.
7년 전 소천한 그의 아버지 김상용 장로도 그랬다. 기업을 하면서도 어려운 일은 하나님께 묻고, 가난한 교회와 목회자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장을 지을 때도 공장 안에 교회를 함께 지어 사원들이 예배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실로 연천 공장 안에 세웠던 교회는 성도들이 늘어나 최근 법원동산교회로 독립해 강서교회 지교회가 되었다.
김재웅 장로는 아버지의 이런 신앙경영 마인드를 그대로 승계했다. 김 장로는 특히 기본을 충실히 지킨다. 그는 “공예배는 꼭 지키고, 말씀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면서 “매달 첫 주 월요일에는 천안공장과 연산공장에서도 예배로 한 달을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서교회에 뿌리내리고 신앙 꽃피워
김 장로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강서교회 개척 때부터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강서교회만 섬겨왔다. 그래서 강서교회 주일학교 1회 졸업생이라는 특별한 이력도 갖고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 년을 꾸준히 성가대원으로 봉사해 최장기 성가대원으로도 손꼽힌다. 또 청년부에서 아내 이혜윤 권사를 만나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현재는 아내와 두 딸도 함께 할렐루야성가대에서 봉사 중이다. 성격상 교회 내에서도 이름이 알려지는 일을 꺼려해 드러나는 사역은 이것 뿐이다. 그러나 섬기고 나누는 일에 남모르게 헌신하는 그는 교회의 숨은 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선교하는 장로로 은퇴하고 싶어
앞장서서 일하기보다 뒤에서 필요를 채워주고 싶다는 김 장로는 ‘선교재단’ 설립을 꿈꾸고 있다. 그는 “아버지께서 생전에 생활이 어려운 목회자들을 돕고, 작은교회들을 후원하고, 해외에 선교하는 일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려고 하셨는데 그 유지를 이어 선교재단 설립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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