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원자력 학자로 인정
조국에 복음 전하기 위해 귀국
헤비타트 등 봉사 실천 앞장

▲ 2009년 말레이시아에서 원자력 강연을 하고 있는 정근모 장로.
1939년에 태어난 정 장로는 경기중학교 시절 전국수석, 경기고에서 고교과정 4개월 후 월반해 서울대 문리대 차석 합격, 서울대행정대학원 수석 합격 등 천재 소리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시간주립대를 수석으로 합격하고 불과 24세의 나이에 플로리다대학에서 교수가 됐다. 이어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소 연구원, MIT공대 핵공학과 연구교수, 미국 뉴욕공대 교수를 거쳐 한국에 돌아와 KAIST 부원장, 한국전력기술(주)사장, 과학기술처 장관(12대,15대), 호서대와 명지대 총장을 거쳐 국제원자력기구 의장, 세계원자력 한림원 원장,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원장 등을 지내며 한국과 세계의 과학기술을 이끄는 핵심 과학자의 삶을 살았다.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정 장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아들의 투병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신부전증으로 죽음 직전에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정 장로는 아들에게 자신의 콩팥을 주었지만 수술은 실패했고 병원으로부터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란 판정을 받게 되었다. 절망 속에 있던 정 장로를 구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참석한 부흥회에서 성령 세례를 받고 새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아들은 반복된 투병 생활 끝에 결국 36살의 나이에 천국으로 떠났지만 복음을 영접한 정 장로의 삶은 이미 예수님 우선의 삶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 평생 과학기술을 최고로 학문만을 의지했던 그가 주변의 많은 석학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봉사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정 장로는 20년 이상 한국해비타트 사역에 동참하면서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을 감당했다. 또한 1997년 제4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을 지내는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꾸준히 섬기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정 장로는 최근에는 케냐에 과학원을 창설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직접 카이스트를 설립해 본 경험을 살려 제3세계 국가에 교육봉사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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