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 영향으로 검소한 생활 묘사 이어져
그림 크기 작아지고 겸손과 낮아짐 담아
정돈된 삶·절제 강조

▲ 얀 반 호이엔의 '강변의 풍차'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이 남긴 유산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종교개혁이 미술에 끼친 영향을 짚어보는 포럼이 열렸다.

아트미션은 지난 8월 25일 ‘예술의 창조적 영성’이라는 주제로 2017 크리스천 아트포럼을 열고 당시 사회 전방위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왔던 종교개혁이 예술에 끼친 영향력을 조명했다.

이날 발제한 라영환 총신대 교수는 “16세기 종교개혁과 더불어 일어난 성상파괴운동으로 예배당 내부의 성화들과 제단들이 거의 제거되었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 안에서의 형상과 이미지의 사용은 우상숭배로 오해받기 쉬웠다는 것이다.

라 교수는 “그렇다고 칼빈이 예술을 기독교 신앙과 대치되는 것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며 “성화와 성상이 자제된 상황에서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풍경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라 교수는 “칼빈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화가들은 세속적 이미지 속에서 거룩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특징”이라며 “이는 세상 속에 거룩을 심고자 했던 종교개혁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하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 렘브란트의 '폭풍 속의 그리스도'
얀 반 호이엔의 ‘강변의 풍차’를 예를 들어 보자. 황량한 강가에서 쪼그리고 일하는 인간의 모습이 하늘과 대비해 무척 작다. 마치 하나님의 보살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것 같다. 그렇게 작은 인간들이 곳곳에서 얼굴도 드러나지 않은 채 작업에 골몰해 있는 모습에서 검소하고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친 프로테스탄트들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개혁 이후 성화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물론 이전과 비교해 종교적인 주제를 그린 그림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렘브란트 등의 화가들은 여전히 성경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다만 이들의 그림에는 종교개혁 전 가톨릭 제단화에서 보이는 과시하는 듯한 크기와 극적인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서성록 교수(안동대학교 미술학과)는 “렘브란트의 작품에는 바로크 시대의 가톨릭 미술과는 대비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풍경화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과장 없이 재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렘브란트 또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성경 이야기를 그렸다는 것이다.

▲ 페터 데 호흐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와 곁에서 개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
칼빈주의를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이 ‘폭풍 속의 그리스도’이다. 그림 속에는 폭풍이 부는 바다 위에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배가 한 척 있다. 배 안에는 그리스도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제자, 기도하는 제자, 필사적으로 돛 줄을 붙잡고 있는 제자 등이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 없으면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모습이다. 라영환 교수는 “이 그림에는 칼빈주의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무조건적인 은혜’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또 종교개혁 이후 미술은 ‘교훈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절제할 것’, ‘정돈된 삶을 살 것’, ‘어린이 앞에서 본을 보일 것’, ‘자선을 베풀 것’, ‘기도생활에 힘쓸 것’ 등의 교훈을 직접적으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페터 데 호흐가 그린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와 곁에서 개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라는 작품을 보면 배경인 거실에는 꼭 필요한 물건만 놓여있다. 그리고 그림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 간의 사랑과 정돈된 삶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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