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보다 조선인을 더 사랑한 선교사
죽을 때까지 고아·한센인 위해 헌신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 등으로 조망

한 외국인 선교사의 헌신과 사랑 이야기가 한국 교회에 조용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독일계 미국인 서서평(본명 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 이야기다. 서 선교사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서서히 평온하게’(CGNTV)와 책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두란노)로 소개되고 있다.

영화는 지난달 26일 개봉해 지금까지 9만여 명이 관람했다. 책은 백춘성 장로가 써 1980년 출판됐던 ‘천국에서 만납시다’를 현대에 맞게 개정해 다시 펴낸 것이다. 2010년 소천한 백춘성 장로는 서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천국에서 만납시다’를 썼다고 저자 후기에 밝히고 있다.

대체 ‘서서평’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100년이 지난 지금 책으로 또 영화로 다시 조명 받고 있는 것일까?

친모에게 버림받은 경험 사랑으로 승화
서서평 선교사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그를 두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할머니가 사망한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와 살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를 두고 기도하던 서 선교사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직업으로는 간호사, 영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선교사’가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또 같이 간호학을 공부하던 동료의 권유에 따라 개신교 예배에 출석하게 됐다. 서 선교사는 카톨릭에 비해 자유로운 개신교 예배 형식과 ‘하늘나라는 업적을 이뤄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가르침에 감동받아 개종하게 된다.

하지만 대신 어머니를 잃게 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서 선교사의 개종 결정에 크게 실망해 그를 내쫓아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서 선교사는 그 후 간호학과 신학 공부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1912년 미국 남장로교 해외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한국으로 오게 된다.

서서히 평온하게
한국에 온 서서평 선교사는 전라도 광주에 터를 잡고 ‘한 명의 조선인처럼’ 살기 시작한다. 의복도 검정 고무신에 무명으로 지은 한복 등 조선식으로 입고, 이름도 ‘서서히 평온하게’ 살고 싶다는 본인의 뜻을 담아 ‘서서평’으로 짓는다. 당시 대부분의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서양식 생활 방식과 의복을 고집했을 뿐 아니라 사는 곳 또한 구별된 구역에서 살았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선택이었다.

한센인, 노숙인 등 병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는 곧 ‘나환자들의 어머니’란 별명을 얻게 된다.

또 특별히 여성과 고아들을 돕는 데 열성을 보이게 된다. 아마 아버지 없이 태어났으며 어머니에게도 버림받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들 속에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성들을 교육하기 위해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인 광주 이일학교를 세우고, 조선간호부회(현 한국간호협회)를 세워 간호사들을 양성해 나갔다. 모두가 외면했던 윤락여성들을 향락가에서 구해내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평생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몸으로 14명의 고아들을 양자로 입양했다.

서서평 선교사의 복음 전파는 광주 일대 뿐 아니라 제주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서 선교사는 제주도를 모두 세 번 방문해 부흥회 등을 이끌며 전도에 힘쓴다.

이후 서 선교사는 풍토병에 걸려 54세의 나이로 소천한다. 그가 세상을 떴을 때 그에게 남아있던 물건으로는 ‘담요 반 장, 강냉이가루 두 홉, 동전 일곱 개’가 전부였다. 그 정도로 욕심 없이 베풀며 살았던 그는 자신의 육신 또한 의학용으로 기부했다. 서 선교사의 소천 소식을 실은 동아일보 기사는 그를 ‘재생한 예수’라고 표현했다.

삶의 자리에서 작은 예수로 섬기며 살아가고픈 기독교인이라면 영화로, 또 책으로 서서평 선교사를 만나보자. 그의 섬김과 낮아짐이 전하는 울림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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